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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 본문

雜食性 人間

차별의 언어

하나 뿐인 마음 2021. 1. 31. 16:24

장한업 지음. 아날로그.

내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가 초래하는 ‘차별’을 반성하고 고치고 싶어 선택한 책이었는데 기대하던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나는 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편을 원했지만, 이 책은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 박힌 차별의 역사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는 ‘기초편’에 해당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다짜고짜 문제를 적시하지 않고 시작과 과정을 친절하게 알려주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진지하고 친절한 책.

새길 내용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 차이와 다양성을 혼용한다는 내용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름에 초점을 맞추며, 내 기준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포용 내지 수용하고자 하는 삶을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말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아 마땅한 온전한 개인이며 낫고 못함이 따로 없다고 했지만, 나는 나의 분명한 기준점이 있었고 내 잣대로 그들을 보며 잣대를 치우기보다는 많은 이들에게 넉넉하고 따뜻한 잣대면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중심주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차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데, 나는 단호하고 포기할 수 없는 ‘중심’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내 중심을 얼마나 부수며 살 수 있을까. 그래도 이렇게 배우고 뉘우쳐가며 어떻게든 조금씩 부수어가면서 나아가야겠지. 삶은 여전히 배울 게 참 많구나.


"울타리는 울타리 안의 사람과 울타리 밖의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이때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호막이 되지만 그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차단막이 됩니다. 박노자 교수는, 한국인은 ‘우리 것’은 본래 좋고 우월한 것이며 우리 속에 사는 ‘나’는 별로 잘난 게 없어도 우리에 속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당히 잘난 것처럼 여긴다고 지적했지요. 그는 또 한국인이 우리와 관련이 있는 것은 모두 도덕적이라 여기는 바람에 ‘그들’의 도덕성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언어는 사고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사고의 울타리도 함께 치고 있는 셈입니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요? 민족의 개념이 출현한 시기나 ‘민족’ 혹은 ‘단일민족’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흔적을 조사해 보면, 이 ‘오래전’은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민족의 열사를 5000년이라고 본다면 극히 최근의 일인 셈이지요."

"국내 사전에 따르면 ‘민족’은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입니다. 즉 사전에서 민족을 정의하는 조건에 지역, 언어, 문화, 역사는 포함되지만 혈연이나 혈통은 포함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혈연이나 혈통이 엄연히, 아니 오히려 다른 요소보다 우세하게 존재하고 있지요."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주시경 선생입니다. 1910년대에 주시경 선생 등 몇몇의 국어학자들이 ‘크다’ ‘하나’를 뜻하는 고유어 ‘한’을 붙여 한글은 ‘큰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부른 데서 비롯되었지요."

"요즘 신조어 중에 다문화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문화맹은 ‘다문화’와 ‘맹’을 붙여 만든 말입니다. 자신의 문화가 여러 문화로 이루어진 것을 모르는 상태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키지요. 다시 말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다문화사회고 자신이 다문화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다문화맹인 것입니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곳으로, 지도를 펴보기만 해도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화가 넘나들던 곳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 일본, 미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다문화적 공간이고요. 따라서 한국 문화는 본래 ‘다문화’고, 그런 문화를 가진 한국 사회는 ‘다문화사회’이며 그런 사회에 사는 한국 사람은 ‘다문화인’인 것이지요. 다문화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입니다."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이 용어 속에 한국인 특유의 단일의식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한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정을 ‘단문화가정’이라고 전제해야 하는데 이 전제 자체가 단일의식의 산물인 것입니다."

"미국 다문화교육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제임스 뱅크스는 다문화교육을 “다양한 사회 계층, 인종, 민족, 성 배경을 지닌 모든 학생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 과정과 교육 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교육 개혁 운동”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다문화교육은 ‘극소수 학생’을 위한 교육인 것이지요. 사회 계층, 인종, 민족, 성 등의 다양한 범주가 ‘이민자’라는 단 하나의 범주로 축소된 것입니다."

"“다문화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박경태 교수)"

"정체성은 ‘똑같음’ ‘하나임’ ‘똑같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정체성을 ‘자기동일성’이라고도 하는데, 자기동일성은 ‘타인과 구별되는 한 개인으로서 현재의 자신은 언제나 과거의 자신과 같으며 미래의 자신과도 이어진다는 생각’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의 정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이민자라는 정체성은 여러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고 이 정체성 역시 시간과 함께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단일민족’ ‘단일 문화’라는 정체성 역시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정체성은 결코 정체(停滯)된 것이 아니라 한평생 동안 끊임없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아기가 자라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다시 성인이 되어 마지막에는 노인이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아무리 내외하던 부부라도 수십 년 같이 살다 보면 허물없는 사이가 되고 이에 따라 호칭도 허물어집니다. 문제는 ‘허물없이’가 ‘체면을 돌보거나 조심할 필요가 없이’를 넘어 ‘함부로’가 될 때입니다.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요."

"다양한 특성들은 단색적인 한국 사회를 좀 더 다채롭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서 배운다’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없애려 하기보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대상을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단일민족성을 강조하면 영토 내에 거주하는 다른 민족이나 국가들과의 상호 이해와 우의 증진 등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한국 정부에게 단일민족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하라고 권고했지요. 다행히도 노무현 정부가 이 권고를 수용해 2007년에는 교과서에서 ‘단일’이라는 표현이 삭제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혈통을 강조하고 단일민족임을 암시하는 구절은 교과서 곳곳에 남아 있지요."

"고정관념의 형성은 다양한 형태의 중심주의 centrism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이 중심주의에는 자기중심주의, 사회중심주의, 민족중심주의가 있습니다."

"사회중심주의를 따르는 개인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중시하고 이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무시하거나 배제하기 쉽지요. 이런 사회중심주의는 가족, 직업, 사회 계층, 정당, 종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회 집단들은 외부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하나의 여과기 역할을 하면서 개인의 태도와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요."

"아동은 자기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자기중심주의) 자기의 존재가 전적으로 자기에게 달려 있다고 여깁니다. 여덟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타자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고, 자기중심주의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사회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아동기의 자기중심적 성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의 이해관계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세계관을 상대화하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관만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지요."

"민족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문화적 참조 체계를 유일한 기준으로 여기며 다른 민족 집단을 열등하게 보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쉽지요. 민족중심주의는 다른 민족을 저평가하고 배제하기 때문에 외국인 혐오증이나 인종주의와 쉽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편견은 영어로 ‘prejudice’입니다. ‘미리 내린 판단’을 뜻합니다. 사회과학에서는 편견을 ‘한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실제적인 경험이 아니라 일반적인 생각에 의거하여 내린 판단이나 행동’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생각’은 고정관념이라 볼 수 있으므로, 편견은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내린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실제적인 경험이 아닌 고정관념으로 판단하다 보면 그 판단은 잘못되거나 부정적인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편견을 없애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신이 가진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과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흔히 사람들은 차이를 ‘다양성’과 혼용하곤 합니다. 차이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그런 정도나 상태’를 말하고, 다양성은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을 말합니다. 즉 차이는 ‘상태’고 다양성은 ‘특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차이는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등이 ‘다르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다양성은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등이 ‘여러 가지’라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또 차이에는 중심이나 기준이 되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다양성에는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요."

"중심주의가 존재하지 않으면 차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심이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면 A와 B는 서로를 존중하게 되고, 이런 존중은 다양성이라는 가치 개념으로 바뀌지요. 문화적 차이와 달리, 문화다양성은 수용과 존중을 내포하는 하나의 가치 개념입니다. 인간 사회의 차이가 제도와 관계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가치지요. 이 개념은 개개인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과 인간의 ‘다를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편견이 겉으로 드러나면 차별이 됩니다. 차별은 민족,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이 사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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