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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쉼, 주님을 만나는 시간 본문

雜食性 人間

쉼, 주님을 만나는 시간

하나 뿐인 마음 2021. 3. 12. 12:08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지음. 안소근 옮김. 가톨릭출판사.

근래에 읽은 ‘주님의 기도’에 관한 세 번째 책. 사제 피정을 지도하시면서 ‘주님의 기도’를 주제로 삼으신 것을 정리한 책이다. 사제들을 향한 강의인데도 놀랍도록 현실적이었고, 근래에 돌아가셔서 그런지 새롭게 맞닥뜨린 현실을 피하지도 애두르지도 않는다. 따뜻하고 정중하지만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사제들을 드높이지 않으니, 피정 강의를 듣는 사제들도 이 글을 읽는 평신도들도 모두 하느님 앞에 가난하지만 사랑 받는 자녀로 서게 한다.

많은 말들을 받아 적었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건 이 말씀이다. "아직 우리는 악의 부조리함 속에 잠겨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우연히, 실수로, 나태함으로 오류를 범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부조리한 악, 근거 없는 악, 그 자체로 의도된 잔인함, 성공의 우상은 하나의 실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러한 부조리함의 결과이며, 그래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현실적입니다."

마르티니 추기경님은 참 존경스럽다. 앎과 따름이 서로를 붙들고 채운다. 진정 기도하셨기 때문이리라. 당분간 기회가 되는대로 ‘주님의 기도’에 관한 영성 서적을 계속 읽어야겠다.

p.23
"성체는 매일 우리의 모든 일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빵을 쪼갤 때 주님께서 우리를 건설하시고 만나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직접 건드리시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하시며 식별의 선물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p.25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하나의 기초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객관적으로는 예수님이고 주관적으로는 그분에 대한 신앙입니다."

p.25
"기도와 매일의 조배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p.35
"아버지는 우리의 희생, 우리가 무상으로 내어준 것, 우리가 겪은 은밀한 모욕, 때로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서 해를 입으면서 지켜야 하는 침묵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갚아주시는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전적인 신뢰로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맡깁니다."

p.40 ~ p.41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주님의 기도를 바치게 하시는 성령께 우리 자신을 내맡겨,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라는 상태에 이르기를 배우는 것을 뜻합니다."

p.63
"때로는 우리 안에서, 기도와 신앙의 분위기에서 멀어지고 천상적 실재들에 대한 개방에서 멀어져 더 이상 성령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신앙에 대한 큰 유혹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거의 믿지 않는 사람의 눈으로 판단하게 되고, 신앙인의 상황은 우리에게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꾸준한 기도, 충실한 성사 실천, 자제를 통해 얻게 되는 성령의 능력만이 우리를 다시 신앙의 삶의 진리로 돌아오게 합니다."

p.83 ~ p.84
"우리는 불평을 합니다. 사람들이 응답하지 않는다고, 듣지 않는다고, 오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없고 이교적인 이 세상 안에서 복음적 신앙을, 세례 신앙을 산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기적입니다. 그러니 먼저 이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리십시오. "

p.83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 안에 항구한 감사의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

p.85
"고해는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로 시작해야 합니다. 지난번 고해 이후로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해 주신 것에 대하여 주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p.90
"다양성과 서로 다른 이들이 존재하는 오늘날에는, 공동체로서의 회개가 점점 더 필요합니다.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관용에만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관용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관용은 최선의 해결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p.92 ~ p.93
"아직 우리는 악의 부조리함 속에 잠겨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우연히, 실수로, 나태함으로 오류를 범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부조리한 악, 근거 없는 악, 그 자체로 의도된 잔인함, 성공의 우상은 하나의 실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러한 부조리함의 결과이며, 그래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현실적입니다."

p.94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위협받고 나약하고 부조리와 죄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구원되고 그러한 상황에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아십니다."

p.96
"빚은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빚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그것이 단순히 우리의 일탈이나 위반, 실수, 불법 행위가 아니라 그분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임을 상기시키십니다."

p.97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서 있는 것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관계를 깨뜨렸고, 그 관계가 우리에게 무상으로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힘으로는 그것을 회복시킬 수가 없습니다. "

p.105
"때로 우리는 삶 안에서, 여러 차례 사죄를 받았는데도 주님께서 아직도 우리에게 풀리지 않은 점들을 지니고 계시리라는 두려움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하느님은 진정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p.119
"자신을 성찰할 때에는 형상적 죄들과 더불어, 우리 일상 행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그 행위를 억누르고 어둡게 하며, 덜 즐겁고 더 답답하고 덜 열정적이고 덜 관대하게 하는 무질서와 허영도 살펴야 합니다."

p.119
"무질서란 꼭 형상적 죄 특히 대죄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창조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삶 안에 어떤 무질서하고 불분명함을 던져 놓는 것입니다. 무질서는 죄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우리 자신, 우리의 편안함, 취향,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행하게 되는 행동을 뜻합니다."

p.126
"이냐시오 성인은 마귀가 특히 선의 형상으로, 선한 겉모습을 하고 유혹한다고 경고합니다. 악마는 언제나 더 선을 행하도록 우리를 재촉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만들어 놓습니다. 선하게 보이는 지향에서 출발하여 우리 주위에 공허를 만들어 놓고, 공동체를 파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p.126
"모순이라는 유혹은 우리가 선을 행하는데도 사람들이 우리를 비판하고, 방해하고, 발을 묶고, 놀리고, 가로막을 때에 겪습니다. 그때 우리는 깊은 인내와 항구함, 그리고 겸손이 필요합니다. 흔히 우리의 유혹들은 바로 이런 모순들이고, 그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자체에서, 우리가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우리에게 반대하고,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하고, 힘빠지게 합니다."

p.139
"“시간 안에서나 영원 안에서나, 최고의 악은 악한 양심입니다. 악한 양심은 그 자체로, 가장 정당한 내재적 징벌입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단죄, 배교, 최고 선이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싶어하는 것, 영혼 안에 마치 자신의 성전처럼 마귀가 자리잡는 것입니다.” (레드뤼스 신부)"

p.143
"긍정적 힘에서 평온함과 경쾌함이 나옵니다. 어둠의 천사는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무덤 문에서 어떻게 돌을 치울 수 있을까? 군인들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그러나 한순간에 선한 천사가 오고, 돌은 치워집니다."

p.143
"“선한 영은 용기와 힘, 위로와 눈물, 좋은 영감들을 주고 침착하게 하며 선행에 있어서 쉽게 진보하도록 해 주고 장애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한다.” (이냐시오 규칙서)"

p.144
"제가 특히 젊은 신부들에게 자신의 격정과 감정, 혼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그것을 분명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받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괜한 일이 아닙니다."

p.144
"악령은 현혹하고, 슬프게 하고, 두려워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감추고 숨습니다. “인간 본성의 원수가 자신의 흉계와 거짓 약속들을 올바른 사람에게 제시할 때에는 이것들이 받아들여져서 비밀리에 간직되기를 원하고 바란다. 그러나 이들이 훌륭한 고해 사제, 또는 원수의 속임수와 사악함을 아는 다른 영적인 사람에게 그것들을 밝히면 무척 원통해 한다. 이로써 그들의 뻔한 속임수들이 드러나게 되어 자신의 흉계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144 ~ p.145
"우리가 가능한 한 늦게 잠자리에 들자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일입니다. 그럼으로써 악마는 우리의 신체적 피로를, 긴장을, 흥분을, 특히 우울함과 정신적 공허를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우울함에 빠져 있음을 깨달으면 악마는 즉시 달려들어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몸의 언어를 잘 알아듣고 주의를 기울여, 피곤하고 예민하고 불안할 때, 힘이 빠지거나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는 우리 자신의 성향이나 생각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들이 부정적이고 방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p.146
"선한 영은 우리에게 저항하도록 초대합니다. 어려운 순간들에는 굳건해야 합니다. “실망에 빠졌을 때에는 결코 변경을 해서는 안 되며”, “그런 실망에 빠지기 전에 의도하였던 것들이나 결정한 것, 또는 전에 위로 중에 있을 때 결정한 것에 변함없이 항구하여야 한다.”"

p.147
"현실을 목가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우리의 나약함이나 인간적 약함, 자신의 잘못으로 설명되지 않는 악의 신비 안에 휘말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악을 행하고 고통을 주기를 좋아하는 것은 순전한 악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직접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악은 부조리하기 때문입니다. "

p.158
"예수님의 겸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질적인 도약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이 마음에 들고 세속적인 갈망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p.186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수학적인 대답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주님께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시고, 그 대답을 찾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정화되고 무질서하거나 그저 나약하고 환상적인 욕구들에서 해방되며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를 찾도록 하신다고 믿습니다."

p.188
"하느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는 것이 백 퍼센트 확실하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그들에게, 확실한 것을 원한다면 결코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삶은 모험이며, 선택들 특히 우리의 실존적 문제들에 관련된 선택들에는 모험이 따릅니다. 기도, 조언, 숙고를 통한 식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수학적 확신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확신은 시간이 지나고 항구하게 평화 안에 머물면서야 얻게 될 것입니다."

p.210
"“만족하는 가난”(요한 23세 교황님) 많은 것을 찾지 않고 자신이 지닌 것에 만족하며,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필요한 것을 주시기를 주님께 청하지만, 또한 유혹과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부유하게 만들지 마시기를 청하는 사람의 영성입니다."

p.212
"분명 주님의 기도는 부자들이 아니라 소박한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필요한 것으로 만족하기를, 지나친 것을 바라지 말기를, 모든 것을 차지하려 하지 말기를, 주어지는 것으로 감사하기를 말해줍니다."

p.214
"주님의 기도에서 청원이 복수형으로 되어 있음을 기억합시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그래서 이 청원은 우리의 연대성을 불러일으키고 가난한 이들,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이들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민족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기도에서 정의를 위한, 모든 이들이 적어도 생존에 필요한 것을 받도록 하기 위한 운동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p.215
"우리는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확실하고 안전하고 눈에 보이는 계획에 집착하고 염려하고 매달리며, 섭리에 아무런 여지를 남겨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섭리가 갑작스러운 불행이나 질병과 같은 뜻밖의 사건들로 우리를 놀라게 할 때 우리는 지나치게 우리 자신에 의지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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