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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RB 제66장 수도원의 문지기들에 대하여 본문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RB 제66장 수도원의 문지기들에 대하여

하나 뿐인 마음 2020. 6. 24. 13:56

 

 

수도원의 문지기는 말을 주고받을 줄 알고 인격이 성숙하여 함부로 나돌아 다니는 일이 없는 현명하고 연로한 사람(1절)이어야 하며 방문자들이 언제나 응대할 사람을 찾을 수 있어야(2절) 한다. 또한 "누가 문을 두드리거나 가난한 사람이 외치거든 즉시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하거나 또는 "강복하소서"하고 대답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온갖 양순함과 사랑의 열정으로 재빠르게 응대할 것이다."(RB 66,3-4) 사람이 올 때마다 한결 같이 즉시 '응답'할 자세를 갖추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피곤한 날에도 그리스도는 오시는 법이니 그 장소에 늘 머무르는 것만으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문지기는 기본적으로 '열어서' '들어오게' 하며,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내어주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다. 수도원 안에서 수도원을 등 뒤에 두고 앞으로는 세상을 만나는 사람. 세상과 만나는 우리 모두가 실은 수도원의 '문지기'인 셈이다. 

 

"수도원에는 가능한 한 필요한 모든 것, 즉 우물, 방아, 정원이나 여러가지 작업장들의 일들이 수도원 내부에서 이루어지도록 배치되어 있어야 하며..."(RB 66,6) 수도원 문지기에 관한 장에서 뜬금없이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수도원 안에 가능한 모든 것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 왜 나올까 싶었었는데, 우리 각자가 수도원의 문지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방과 봉쇄의 삶을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내 안에 마르지 않는 샘(요한 4장 참조)이 있어야 하는데 이 마르지 않고 샘솟는 물은 우리의 봉쇄의 삶에서 나온다. 물을 길어올리기 위해 우물을 깊게 파듯, 우리의 수도생활은 세상과 구별되는 고요함 속에서 하느님 안에 잠기는 시간이 우리를 살게 한다. 이 힘으로, 이 생명의 힘으로 우리는 세상을 향한 문을 여는 것이다. 

 

환대나 문지기를 말할 때 생각나는 수녀님이 있다. 얼마 전 돌아가셔서 너무나 그리운 수녀님이신데 조그맣고 바지런하신 우리 수녀님은 '띵똥'하고 벨이 울리면 피곤한 몸을 기대고 잠시 쉬시다가도 얼른 일어나 방긋 웃으시며 "아이고, 우리 그리스도씨 오셨네!"하고는 종종 걸음으로 문을 열어주러 나가셨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이 이야기만으로도 미소 지으며 '어련히 그러셨으리라' 짐작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응답'의 모범이시다. 언제나 등뒤로 침묵과 기도의 공간인 수도원에 마음을 활짝 열고 계셨기에 세상을 향해서도 문을 활짝 열 수 있으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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