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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RB 제33장 수도승들이 어떤 것을 개인 소유로 가질 수 있는가 본문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RB 제33장 수도승들이 어떤 것을 개인 소유로 가질 수 있는가

하나 뿐인 마음 2020. 6. 17. 21:54

 

 

개인 소유에 대한 규칙서를 읽으면 자동으로 "답은 '없다' 입니다"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던 수련소 시절이 생각난다. 입회하기 전에도 수도자는 가난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하나도 없다니! 그런데 이 '없음'과 더불어 하나를 더 알게 되었으니 '공동 소유'라는 개념이다. 즉 성규에서 제시하는 가난의 이상은 다름 아닌 '공동 소유'이다. 수도원의 모든 것은 모든 이에게 공동 소유가 된다.

 

사부 베네딕도는 아빠스의 명령 없이는 누구라도 무엇을 주고 받지 못하며, 어떤 것도 개인 소유로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RB 33장 참조) 그 이유를 "자기 몸과 뜻도 개인의 마음대로 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RB 33,4)라고 밝힌다. 더불어 "'모든 것은 모든 이에게 공동 소유가 되어야 하며', 누구라도 '무엇을 자기 것이라고 말하거나' 생각지도 말 것이다."(RB 33,6)라고 덧붙인다. 수도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자기 자신마저도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이기 때문이며, 자신마저도 하느님께 드렸으니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 역시 하느님의 것이 된다. 

 

제목과 3절에 나오는 단어 '가지다'habere는 '갖다'to have보다 '간주하다'to consider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에스더 드 왈). 그러므로 마음의 문제 즉 의도의 순수성을 간파하는 성인이 탐욕을 염두에 두고 쓴 규칙일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무엇을 내것이라고 여기는 순간부터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처리하길 바라는 재량권을 스스로 부여하게 되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이는 '자기 뜻의 포기'와는 정반대의 행동이다. 특히 물건을 준 사람은 받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고, 받은 이는 준 이에게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자의 가난, 정결, 순명은(베네딕도 수도자로 말하자면 수도승다운 생활, 순명, 정주)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이 서원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일에 자신의 전 삶을 투신하는 것이다. 베네딕도 성인은 철저한 물질적 가난을 이상으로 삼지 않았다. 아무것도 자신을 위해 비축해 두어서는 안 되고 자기 몸과 뜻마저 소유할 수 없는(RB 33,4) 이 철저한 소유 포기의 밑받침 중 하나는 공동체를 강조함이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승이 아무 걱정 없이, 공동체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기를 바랬다. 그래서 바로 뒤따라 나오는 규칙에서 "성서에 기록된 바와 같이 '각자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줄 것이다.'"(RB 34,1)라고 말한다. 이는 연약함을 고려한 것으로 적게 필요한 사람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애석하게 생각하지 말 것을, 많이 필요한 사람은 연약함에 대해 겸손하고 자비를 받은 데 대해 교만하지 말 것(RB 34,2-4 참조)을 권고 받는다. 수도등은 모든 것을 하느님과 아빠스에게 바랄 수 있고, 필요한 것(편리한 것이 아닌)으로 만족하는,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는 공동 소유의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철저한 포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도 '하느님'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많이 가진 이가 높고 적게 가진 이가 낮다고 말한다 해도, 많이 가진(많이 필요한) 수도승은 세상과 달리 자신이 연약한 인간임을 알고 적게 가진(적게 필요한) 수도승은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공동 소유의 삶은, 자유롭게 사용하되 허락을 얻음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떳떳한 삶이다. 공동의 것을 사용할 때마다 내게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신중한 삶이다. 마음껏 사용하되 멋대로 하지 않는 진중한 삶이다. 선물처럼 주어지니 은총의 삶이다.

 

나는 한없이 부족한 수도자이지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가 하느님임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누리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들어왔지만 만족하며 살고 있고

내게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 것은 내 삶에 진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더불어 과분한 것은 마다할 줄도 알고 부족함도 달갑게 받을 줄 알게 되었다, 하느님 때문에.

인간인지라 욕심이 날 때도 있고 아쉬울 때가 왜 없겠냐마는

고갯길을 넘듯 그때마다 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두 손을 털고 일상을 간추리며 조금 더 가벼운 짐을 꾸려 그분께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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