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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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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食性 人間

소설처럼

하나 뿐인 마음 2019. 2. 24. 23:11

다니엘 페나크 지음. 이정임 옮김. 문학과지성사.


독서에 관한 사랑스러운 에세이. 할머니 벽장에서 콩으로 만든 귀한 강정 하나씩 빼먹다가 아예 봉지째 꺼내서 벽장 밑에 쪼그리고 앉아 바삭바삭 씹어 먹던 어린 시절 귀퉁이 기억처럼, 하나하나 모두 맛난 이야기들. 어, 이건 내 얘긴데? 그래, 그랬었지. 아이고, 부끄러워라. 가만 있자, 그 이름이 뭐였더라? 맞어, 그런 사람 꼭 있지. 누가 물어온 것도 아닌데 혼자서 계속 대답을 해가며 며칠 동안 즐겁게 책을 읽었다. 게다가 다 큰 아이들을 위해 읽어 준 책이 쥐스킨트의 책이라니! 물론 나는 향수보다는 쥐스킨트의 다른 책들을 더 좋아하지만, 쥐스킨트를 열고 또 다른 세상으로 뛰쳐들어간 아이들처럼 나 역시 쥐스킨트라는 또 다른 문을 열고  두리번 두리번 그 세상에 들어섰다.


어린 시절 내게 없는 기억 중 하나가 바로 엄마나 아버지가 머리맡에서 책 읽어주시는 거다. 옛날 분들이라 그랬으리라 막연히 짐작만 할 뿐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튼 글을 깨치기 시작한 그때부터 끙끙 혼자 책을 읽었던 기억 밖에 없다. 내 생애 앞으로 해보지 못할 일들이 꽤나 있겠지만-가요방이라던가 바닷가 수영이라던가 농구라던가 찜찔방이라던가 늦은밤 포장마차라던가 헬스라던가 ㅎㅎㅎ-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아이 머리맡에서 동화 읽어주는 일이다. 이젠 동화 대신, 청년들과 렉시오 디비나 할 때 성경 텍스트를 천천히 읽어주지만. 


메모해 두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수많은 아쉬움들을 한 번씩 웃으며 추억에 잠긴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대신 챕터49 만큼은 통째로 옮겨두고 싶었다.


49

그건 그렇다 치고, 과연 나의 하루 생활 계획표의 어디쯤에 독서 시간을 집어넣을 것인가? 친구들과의 시간에?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에? 오가는 시간에? 가족과의 시간에? 숙제할 시간에?

언제 책을 읽을 것인가?

이건 중차대한 사안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떠안고 있는 만인의 고민이기도 하다.

책 읽을 시간이 고민이라면 그만큼 책을 읽을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책 읽은 시간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도, 학생들도, 어른들도, 다들 살아가는 일에 치여 책 읽을 짬이 없다. 생활은 독서를 가로막는 끝없는 장애물이다.

"책이요? 읽고야 싶지요. 하지만 직장 다니랴, 아이들 챙기랴, 집안일 하랴, 도무지 짬이 나지 않으니......"

"당신은 책 읽을 여유라도 있으니 좋겠군요!"

그런데 어째서 어떤 여자는 일하고, 장 보고, 아이들 키우고, 운전하고, 남자를 셋이나 사귀고, 치과에 다니고, 다음주면 이사를 가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책 읽을 시간이 나는데, 어째서 어떤 남자는 단출한 독신에 연금까지 받아가며 하릴없이 빈둥거리는데도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걸까?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나 사랑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대체 어디에서 훔쳐낸단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무의 시간에서다.

그 '삶의 의무'의 닳고 닳은 상징물인 지하철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이 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듯, 삶의 시간을 확장한다.

만약 사랑도 하루 계획표대로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에 빠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들 사랑할 시간이 나겠는가? 그런데도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도 책 읽을 시간을 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일 때문에 좋아하는 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독서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효율적인 시간 운용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도 사랑이 그렇듯 그저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문제는 내게 책 읽을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그렇다고 아무도 시간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테니),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결국 시간에 대한 장황한 논의는 펑키머리 가죽부츠의 짤막한 몇 마디로 일출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읽을 시간이요? 전 아예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요!"

그가 주머니에서 짐 해리슨의 『가을의 전설』 문고판을 꺼내 보이자, 벌링턴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하…… 그래서 재킷을 살 때는 먼저 주머니 크기가 문고판인지 제대로 된 규격판인지를 확인해야 하는 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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