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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축복 받은 집 본문

雜食性 人間

축복 받은 집

하나 뿐인 마음 2018. 12. 13. 11:13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나는 손이 작은 편이라 고무장갑을 끼는 것이 늘 불편했다. 고등학생 때까지야 사실 집안일을 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으니 고무장갑을 낄 일이 거의 없었지만, 엄마가 투병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고무장갑을 껴야 하는 일이 갑자기 늘어났었다. 수녀원에 입회한 후는 말할 것도 없다. 장갑을 끼면 손이야 보호되겠지만, 움직이는 것도 둔해지고 속도도 더뎌져서 일할 때마다 장갑끼는 일을 극구 마다했었다. 젊을 때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손이야 금방 회복되니, 편하고 싶은 마음에 성가신 장갑은 늘 뒷전이었다. 더불어 손 시릴까, 손 거칠어질까, 혹여 다칠까 염려하시는 수녀님들의 걱정도 뒷전이었고. 


언젠가부터 설거지를 시작하면 장갑부터 찾는다. 물론 손이 시리기도 하고 비눗물에 손이 자주 닿으면 거칠어지다 못해 찢어지기도 해서 손을 보호할 목적도 있지만, 조금 더디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자꾸 쓰게 하는 일을 조금이나마 하지 않기 위해서다. 시간이 아까워 둔하고 느리게 만드는 고무장갑을 애써 멀리했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자신을 아끼고 보호하는 일은 참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조금 둔하게 움직이는 것이나 조금 느리게 일을 끝마치는 것도 타인의 걱정을 애써 불러 일으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란 것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나는,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이모집으로 옮겼다. 다들 잘해주셨지만, 그곳은 내 집이 아니었고 내 삶의 터도 아니었기에(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자주 그 집을 나서거나 옛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곤 했다. 이모 집으로 옮긴 후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난생 처음으로 조금 길게,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돌아온 후 피곤에 지쳐 잠자는 내내, 내가 나고 자란 집으로 여행짐을 들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돌아가는 꿈을 꾸고 또 꾸었다. 다른 동네, 다른 사람들, 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긴 나에게 이모집은 불편하진 않지만 낯선 곳이었다. 차라리 혼자 이민을 갈까 생각했었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돌아가셨고 2학년부터 다시 학교를 다녔으니 대학이란 곳도 내겐 그리고 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진 않았으니 훌쩍 어학연수를 떠날까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민자들의 이야기인 이 책을 읽는 내내 옛날 생각이 많이 났나보다. 그러다 '장갑'이라는 단어를 읽자마자 고무장갑에까지 생각이 미쳤고.


본래도 단편을 좋아하지만, 줌파 라히리의 단편은 특히나 참 좋구나. 이런 이야기들을 더 오래, 더 많이, 더 자주 읽고 싶다.


나는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기에 그 차가운 저녁 공기 속에서 밧줄을 푸는 일이 쉬우면서도 고됐지. 
- ‘한 해의 끝’ 중에서-

헤마는 자기의 삶이나 생각이 얼마나 온실 속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뭍에 오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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