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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애도일기 본문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이순
나는 그 강을 어떻게 건넜던가. 스무살의 나는 슬픔을 간직하는 방법도 떨칠 방법도 하다못해 울 줄도 몰랐다. 다만, 내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며 나와 함께 있어준 수많은 이들 덕에 그 강을 건넜다. 엄마와 산 시간보다 엄마와 헤어져 산 시간이 더 길어진 지금, 슬픔은 옅어지지도 더 선명해지지도 않았다. 그 슬픔은 이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오롯이 존재할 뿐.
"두 번 다시 볼 수 없구나,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구나!
그런데 이 말 속에는 모순이 들어 있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라는 말은 영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한 사람 스스로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니!” 이 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어떤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솜처럼 안개가 짙은 일요일 아침, 혼자다. 한 주 한 주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걸 느낀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그녀 없이 흘러가게 될 긴 날들의 행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용기를 가져야 했던 시간은 다른 때였다. 그녀가 아프던 때, 간호 하면서 그녀의 고통과 슬픔들을 보아야 했던 때, 내 눈물을 감추어야 했던 때.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꾸며야 했던 때. 그때 나는 용기가 있었다.
-지금 용기는 내게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
"한편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이런저런 일에 관여를 하고, 그런 내 모습을 관찰하면서 전처럼 살아가는 나.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이 둘 사이의 고통스러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서 더 고통스러운) 파열 속에 나는 늘 머물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괴로움이 있다. 나는 아직도 “더 많이 망가져 있지 못하다”라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괴로움. 나의 괴로움은 그러니까 이 편견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따뜻하지만, 그러나 혼자다. 그리고 이런 밤에 나는 다시 깨닫는다. 이제 나는 이런 외로운 밤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걸. 이런 고독 속에서 행동하고 일하기. 그러니까 저 “부재의 현정”과 달라붙어서 늘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M.과 내가 똑같이 느끼는 것. 우리가 역설적으로(그러니까 일을 하자, 잊어버리자, 세상을 둘러보자, 라고 말하면서) 일에 열중하고 일에 쫓기는 흥분상태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면, 그때 가장 깊은 비애 속에 빠지고 만다는 사실 내면 안에 머물기. 조용히 있기, 혼자 있기. 오히려 그때 슬픔은 덜 고통스러워진다. "
"이런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차츰 나아지지요 - 아니, 시간은 아무것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시간은 그저 슬픔을 받아들이는 예민함만을 차츰 사라지게 할 뿐이다."
"(사람들이 말하듯) 커다란 생의 위기(사랑, 애도)를 이겨내고자 하는 “작업”은 너무 급하게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런 작업은 나의 경우 글쓰기를 통해서만, 또 글쓰기 안에서만 비로소 완결될 수 있는 것이다."
"애도의 슬픔을 (비참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려 하지 말 것(가장 어리석은 건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다), 그것들을 바꾸고 변형시킬 것, 즉 그것들을 정지 상태(정체, 막힘, 똑같은 것의 반복적인 회귀)에서 유동적인 상태로 유도해서 옮겨갈 것."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당신도 이제 알게 될 겁니다. 결코 위안 같은 건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날이 갈수록 더 많이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이 사실을 깨닫는 일이 다름 아닌 위안이라는 걸."
"애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선은 급성의 나르시시즘이 뒤를 잇는다: 일단은 병으로부터, 간호로부터 벗어나게 되니까.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차츰 빛이 바래고, 절망감이 점점 확산되다가, 나르시시즘은 사라지고 가엾음 에고이즘, 너그러움이 없어진 에고이즘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멜랑콜리는 상실의 상처를 인정하고 껴안기를 거부하면서 오히려 그 상처를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상처에의 집착은 상실의 대상에 대한 애통이 아니라 상처를 당한 자기 자신에 대한 거부,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되는 자기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에 대한 비난이며 고발이다. 다시 말해 멜랑콜리는 상처 받은 자기, 상처 받을 수 없는 자기에게 집착하면서 다른 사랑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자기 안에 고여 있는 리비도 현상이다.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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