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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르 7,31-37 닫혀있는 귀가 열려 그분의 소리를 듣고, 묶였던 혀가 풀려 ... 본문

마르코의 우물/마르코 7장

마르 7,31-37 닫혀있는 귀가 열려 그분의 소리를 듣고, 묶였던 혀가 풀려 ...

하나 뿐인 마음 2018. 9. 9. 22:26


손 정도만 얹어주셔도 될 것 같았는데 동작 하나하나 정성껏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이시는 모습을 그려보며 이 장면이 렉시오 디비나의 과정 같이 다가왔다. 손 정도 얹어주시는 기대감으로 당신 앞에 앉았는데 나를 온전히 당신 쪽으로 끌어당기셔서 치유해 버리시는 말씀. 당신으로 돌아 앉게 하고 기어이 마음을 열게 만드는 손길 같은 성경 말씀.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는 치유 과정처럼, 알아듣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아 굳게 닫혀있던 마음이 열리고 딱딱하게 굳어버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속내 것들을 나직이 털어놓으며 제대로 '기도'하게 되는 과정이 바로 렉시오 디비나가 아닌가.


말씀을 제대로 들을 줄 몰랐던 우리지만, 이제 예수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펴보자.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셨다고 하니 분명 이 일이 드러나길 원하신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너와 나'만이 있는 공간, 둘 만이 존재하는 고즈넉한 공간. 말씀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즈넉한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를 바라보시는 예수님 말씀에 모든 감각으로 집중하기 위해 다른 것들이 필요치 않음으로 렉시오 디비나가 시작된다. 


손가락을 두 귀에 넣기 위해선 아마 얼굴을 감싸쥐듯 어루만지셨을 것이다. 예수님을 지근거리 정도가 아니라 코앞에서 눈을 맞추며 응시하는 시간. 나는 아직 그분과 눈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그분은 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며 손가락을 귀에 넣으시고 조용한 소음마저 차단하신다. 진공같은 고요함. 그 적요한 시간을 지나야 말씀이 조금 내게 들어온다.


이제 침을 발라 나의 혀에 손을 대신다. 마치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신 후 태생소경을 낫게 하시려고 침으로 진흙을 개어 바르셨던 것처럼(요한 9장), 이번엔 빛이신 그분이 직접 진흙에 불과한 나에게 침을 바르신다. 도공처럼 나를 또 빚고 빚으려 하신다(예레 18장). 그간 수도 없이 나를 손으로 빚으셨고 여지껏 그 일을 되풀이하고 계시는 분. 그분은 나의 도공이요, 우리는 그분의 진흙이 아니었던가. 


이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다.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한숨과 동일한 단어가 쓰임)하시며 간구해 주시는 성령의 모습이다. 기도가 깊어지면 나와 함께 기도하고 계시는 그분을 체험하게 된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절망감으로 기도할 수조차 없을 때에도 나를 대신하여 기도하시는 그분을 만나는 순간이다. 렉시오 디비나 역시 내가 보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보여주시는 만큼 내가 본다. 기도를 통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분은 내 가장 밑바닥에서 이미 조용히 기도하고 계신다. 


이제 "열려라!"하신다. Be opened.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여는 것이 아니라 열리는 것이다. 그분이 여시면 얼만큼, 어디까지 여실지 알 수 없는 일. 렉시오 디비나 역시 전적으로 그분께 달려있는 일 아니겠는가. 


이제 닫혀있는 귀가 열려 그분의 소리를 듣고, 묶였던 혀가 풀려 그분처럼 말하게 된다. 이는 바로, 알아듣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아 굳게 닫혀있던 마음이 열리고 딱딱하게 굳어버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속내 것들을 나직이 털어놓으며 제대로 '기도'하게 되는 렉시오 디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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