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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르 7,1-8.14-15.21-23(훈화) 본문

마르코의 우물/마르코 7장

마르 7,1-8.14-15.21-23(훈화)

하나 뿐인 마음 2015. 8. 29. 07:57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음식이 중요하니까 음식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서일까요, 사람이 깨끗한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탓하는 바리사이들에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시며 군중을 가까이 불러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이곳에 와 보니, 청년 미사에서 전례를 하는 사람은 치마를 입으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어떤 설명도 없이 전례 봉사를 하는 사람은 무조건 치마를 입을 수 없다는 그 규정을 전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는 그 규정으로 몇년 째 불편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못마땅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전례의 귀중함을 알고 철저히 규칙을 따르던 열심한 청년들과 별뜻 없이 예쁜 옷으로 차려입고 성당에 온 청년들과의 어긋한 시선이었지요. 제 눈엔 정말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데 가끔씩 미사(전례)가 우리들의 잔치가 되기는 커녕 매주마다 서로를 시험대에 올리고 판단하는 장소가 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정작 미사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미사를 드리는 청년들의 마음 속에 불편함을 주는 것은 치마가 아니라, 치마를 입고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과 치마를 입고 봉사를 하는 사람의 억울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규정을 완화시키고 서로를 이해시키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번 주 복음을 읽으면, 이 일과 함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라는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위하여 세상에 오시고, 함께 사시고, 사람을 위해 수난하시고 죽으셨다가, 또 사람을 위해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셨는데 ...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종종 엉뚱하게도 서로를 판단하며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딱 맞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우리를 더럽힙니다. 우리들이 지키려는 것은 하느님의 계명이 아니라 사람들의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깨끗이 씻지 않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중요한 일 아닐까요?


내 안에선 어떤 것들이 나오는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불편했던 마음을 침묵으로 고스란히 드러내지는 않았는지, 반대로 눈감고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다른 의도를 품은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은근히 나를 높이고 상대를 낮추지는 않았는지, 호들갑스럽게 과장하지는 않았는지... 가만히 앉아서 느껴야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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