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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르 7,31-37(훈화) 본문

마르코의 우물/마르코 7장

마르 7,31-37(훈화)

하나 뿐인 마음 2013. 5. 11. 06:25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기적을 베푸시어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려가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고, 예수님께서는 손가락을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혀에 대신 후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시고 “에파타”(열려라) 하십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합니다. 드디어 말을 하게 된 이 사람은 복음서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떠들어댑니다. 예수님께서 분명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음에도 불구하구요. 전 이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며 묵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 말한다는 것은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제대로’ 말한다는 것은 ‘해야 할 말을 제때에 한다’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랜 시간을 말을 더듬으며 살아온 그가 막 치유된 순간에 기꺼이 침묵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요? 그는 몸만 치유된 것이 아니라 마음도 치유가 되었나 봅니다. “열려라” 하신 순간에 귀만 열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그 사람의 마음도 활짝 열렸을 겁니다. ‘많은’말이 아니라 ‘유창한’말이 아니라 ‘선한’ 말, ‘자비로운’ 말, ‘정의로운’ 말, ‘기다려주는’ 말, ‘사랑’의 말...  복음 묵상하시면서 한번씩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해야 할 말을 피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혹 하지 말아야할 말을 해버리지는 않는지... 토마스 머튼의 시 일부를 묵상하셨으면 해서 읽어드립니다. “침묵은 자비입니다. 형제들의 탓을 드러내지 않을 때 지난 과거를 들추지 않고 용서할 때 판단하지 않고 마음 속 깊이 변호해 줄 때 바로 침묵은 자비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제대로 말할 줄 아는 분별의 은혜’를 하느님께 청하는 한주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침묵이 가장 큰 웅변일 때가 있지...이옷 입고 살면서 말에 대해서 묵상할 때가 참 많아졌다. 특히 난 해야할 말을 하지 않는 때가 종종 있다.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할 때, 사랑을 거부하고 싶을 때, 내 안에 스스로 갇혀있을 때...난 해야할 말조차 하지 않고 뒤돌아 앉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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