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인 것이다. (탈출 16,18) #Tolle_Lege 본문

Tolle Lege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인 것이다. (탈출 16,18) #Tolle_Lege

하나 뿐인 마음 2017. 1. 19. 23:29


"더러는 더 많이, 더러는 더 적게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오메르로 되어 보자, 더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더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인 것이다." (탈출 16,17-18)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라(탈출 16,16)는 말씀이 있었지만 더러는 더 많이 거두었고 더러는 더 적게 거두었다. 골고루 집집마다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지는 양식(탈출 16,4)이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 온전히 의탁하지 않으면 연명조차 할 수 없는 곳 광야에서 저녁이면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탈출 16,13)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 메추라기와 만나는 영적 여정에 있어 하느님의 은총 같은 것이다. 


우린 자본주의의 논리에 너무나 익숙하여 신앙에 있어서도 내가 기도를 많이 하면 은총 역시 많이 주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어느 정도는 마음 속에 이런 바램이 있기에 우린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봉사하기도 한다. 메추라기와 만나를 줍던 광야의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이었을까. 더 열심히 발품을 팔았으니 나는 더 많이 가져도 된다는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가지진 않았을까. 하지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은총의 초점을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먹을 만큼)'에 두시는 분이시다. 메추라기도, 만나도, 은총도, 애초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주시는 것이지,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죄를 굽어보시며 은총을 주시듯 그들의 불평을 들으시고(탈출 16,12) 그분은 하늘에서 양식을 비처럼 내리셨다. 


언약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아침까지 남겨 두었다가 구더기가 피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체험한 후 욕심을 버리고 먹을 만큼만 거두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먹을 만큼 거두어들인 후 지천에 널린 만나에서 마음을 접을 수 있기 위해선 해가 뜨거워지면 녹아버린다는 것을 체험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간은 권력의 무상함을, 재물의 허무함을, 욕망의 허망함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쉬이 멈추지 못하니 말이다. 


좀 더 많이 거두었지만 내게 필요한 만큼이었고 좀 더 적게 거둘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역시 내게 필요한 만큼이었던 건, 각자 자기 것만을 거둔 것이 아니라 식구 수만큼, 자기 천막에 사는 이들을 '위하여' 가져갔기(16,16)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기도도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일 때 기적이 일어난다. 필요한 부분을 보시는 분, 채워진 것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미처 채우지 못한 부분 아니 스스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을 눈여겨 보시는 분이 주시는 은총이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내 기도에 비례하여 은총이 주어지지 않으니 기도를 좀 소홀히 해도 될까. 이쯤에서 내 이야기를 덧붙여도 좋을 듯 하다. 수도자의 성무일도는 나 자신의 성덕을 위해 바치는 개인 기도가 아니라,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과 하고 싶지만 시간을 바칠 수 없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 모두를 대신하여 하느님께 세상을 봉헌하는 시간이다.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나 자신을 바치는 시간이므로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다. 오히려 더더욱 기도해야 하고 더더욱 기도하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들은 알리라. 그들은 받게 될 은총 때문에 행복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그 자체로 행복에 겨운 이들이니까. 


오늘도 정해진 분량의 말씀을 읽으며 그날 먹을 만큼만 모아 들였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 여정을 이어간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