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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창세 44,33 화해는 거저 일어나지 않는다 본문

Tolle Lege

창세 44,33 화해는 거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 뿐인 마음 2017. 1. 13. 23:44

(Reconciliation Statue outside Coventry Cathedral)


"이제 이 종이 저 아이 대신 나리의 종으로 여기에 머무르고, 저 아이는 형들과 함께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창세 44,33) 


자신을 죽이기 위해 힘을 모았던 형제들을, 자신을 물기 없는 구덩이에 쳐 넣고 노예로 팔아버린 형제들을, 어쩌면 편협한 사랑으로 자신을 곤란하게 했던 아버지를, 넘치는 사랑에 눈이 멀어 형제들을 상처 입혔던 자신을, 자신을 소유하려 했던 이기적인 여인을,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애꿎은 운명을 가슴에 품고 있었을 요셉. 과거와 뒤바뀐 운명처럼 다시 만난 형제들을 곤경에 수차례 빠뜨리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다의 저 말은 분명 요셉에게, 죽음의 구덩이에 내던져지고 물건처럼 팔려간 외롭고 가련한 비운의 어린 소년이었던 자신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더 이상 형제를 잃지 않으려는 유다의 말,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아들 때문에 애통해 할 아버지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염려하는(자신들은 이집트에 보냈으면서도 또 다시 한 아들을 절대 안된다 한 아버지 야곱) 모습, 밉다는 이유로 형제를 죽이려 했던 이들이 이젠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형제를 살리려는 모습은 더 이상 자신을 옭아매는 미움도, 수도 없이 자신을 쓰러뜨렸던 배신의 쓰라림도 서서히 지나가고 있음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유다의 이 말이 끝나자 요셉은 형제들에 대한 시험을 거두고 자신을 드러낸다. 이제 유다는 요셉을 구덩이에 버려두었던 과거 죄책감에서, 요셉은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에서 해방되고 치유된다. 


화해는 거저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용서되지 않고,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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