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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창세 32장 야곱이 얻어낸 축복은 본문
형에게 용서를 구하는 방법도 '야곱스럽다'. 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공세를 펼치고, 형을 주인이라 부르며 납작 엎드리고,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니 도망갈 궁리도 겹겹으로 마련해 놓고, 사랑도 줄을 세웠다. 몸종의 무리를 앞에 세우고, 다음이 레아, 다음이 라헬과 요셉, 자신은 가장 안전하게 뒤에 섰다. 형의 용서를 몇 번이나 확인했으면서도 여전히 믿지 못하고 함께 가자는 호의를 굳이 거절한 야곱은 정말이지 '야곱스럽다'라는 말 말고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될지도 모르겠다.
축복을 얻어내는 방법도 '야곱스럽다'.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형 앞으로 보낸 다음 자신은 야뽁 건널목을 건너지 않고 강을 하나 사이에 둔 채 홀로 남았다. 그리고는 어떤 사람과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고. 다친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리게 된 야곱은 더 이상 재빠르게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야곱은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하며 여전히 강한 집념을 드러냈지만 다친 엉덩이뼈가 자신에겐 이미 축복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신의 잘못에서 도망치지 않고 빌어야 할 용서 앞에서 물러서지 않을 수 있도록 '절뚝거리게' 된 그 날 씨름의 결과는 야곱에게 '축복'이었다.
약삭빠르고 재발랐으며 능력과 재주도 출중했던 야곱은 하느님과의 씨름 이후 더 이상 자신의 재주과 잔꾀에 기댈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더 체험하고 깨달아야 한다.
살다보면 우리도 하느님과 씨름을 하게 된다. 그 씨름의 결과로 얻게 되는 건 승리의 통쾌함이 아니라, 내려놓음의 평화이다. 하느님과 치열하게 겨루면 겨룰수록 이후 누리게 되는 평화 역시 깊고 탄탄하다.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토마시 할리크)'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야곱에 관한 글이 있어, 여기다 보태어 남긴다.
조너선 색스에 따르면, 야곱의 문제는 언제나 에사우처럼 되고 에사우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했다는 데 있다. 그는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에사우와 씨름했고, 그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으며, 죽 한 그릇에 맏아들 권리를 샀다. 야곱은 에사우의 옷을 입고, 눈먼 이사악이 불렀을 때 "저는 에사우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나쁜 짓을 해서 축복을 가로챘다. 그리고 심판의 때가 가까워져서 에사우가 큰 무리를 이끌고 다가오자 야곱은 몹시 두려워한다.
그러나 밤이 오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사건이 그 밤에 일어난다. 아버지의 앞 못 보는 어둠을 이용하여 사기를 친 야곱은 두려움과 죄책감이라는 어둠 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전투를 벌인다. 그는 알 수 없는 분과 씨름했고 버텨 낸다.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하면서 그곳을 프니엘이라고 이름 붙이는 걸로 보면, 야곱은 상대가 누구신지 훤히 알고 있다. 어둠 속으로 내려가 싸움을 피하지 않고 버텨 낸 덕에, 그는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이제 야곱, 곧 이스라엘은 더 이상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어 할 필요가 없고 마침내 자기 자신이 된다. 그는 형과도 화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큰 힘을 보여 주었던 그는 이제 형과의 만남에서 큰 겸손을 보여줄 수 있다. 어려운 시련의 어둠 속에서 하느님 얼굴을 바라볼 용기를 가졌었기에, 그는 눈먼 아버지의 어둠을 악용했던 잘못을 용서받았다. 그는 이제 밝은 곳에서 형의 얼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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