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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올해의 부활, 공세리 성당 교사 엠마오 본문
엠마오다운 엠마오였습니다. 여태 성주간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채로, 오늘 아침에도 정신 없이 청소하고 복사도 없는 미사 덕에 부활 팔일 축제라고 해도 도저히 기뻐지지 않는 상태로 봉고에 실렸지요. 하지만 나른한 봄이 아니라 화창한 봄이 날 기다린다는 것. 엘에이에 있는 동안 그렇게 해보고 싶던 '꽃놀이'였습니다.
활짝핀 꽃들이 아니라 이제 막 피어오르는 수많은 꽃봉오리들... 완성된 부활이 아니라 이제 막 '되어 가는' 부활이었던 건가요, 주님?
저에게 필요한 것은, 때가 되면 별 감흥도 깨달음도 없이 그저 날짜에 맞춰 부활하게 되는 삶이 아니라 개화를 기다리며 아직도 더 피어야 하는 삶인 것을 이렇게 조용히 일러주시는 당신.
제가 있는 큰 성당과 이렇게 작은 성당, 그 어떤 것도 나 자체는 아님을... 몇 안되는 아이들과 성당에 앉아 있는 저 수녀의 삶과 내 삶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 만나야 한다는 것을...
정글 같고 거대한 숲 같은 성당 건물 안에서 하루 종일 햇볕 볼 일도 잘 없는 요즘의 나의 시간표. 이렇게 바깥에서 성당을 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도 그렇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내가 내 안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 그것이 그간의 '나'였습니다.
조금 멀리서 보고 있노라니 같은듯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모여 바닥을 이루고 있는 타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왜 이리 다른가, 왜 이리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며 모여서 이루어내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조금씩 아귀가 맞지 않는 틈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던 저 아니었습니까. 타일들이 모여 이루고 있는 것이 하늘이 아니라 바닥이라는 것도 제가 요즘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화창한 봄날이라 믿지 않는 이들도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고 성당을 찾았습니다. 성당에 온 이유가 저마다 달랐지요.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 당신을 만나러 온 이들과 경치를 구경하고 온 사람들이 서로 오가는 곳에서 나는 만나기 위한 삶을 사는지, 구경하기 위한 삶을 사는지 또 생각에 잠겼습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계단 가장자리에, 바위 틈을 뚫고 피어난 제비꽃. 처음으로 수녀가 되어 본당에서 떠났던 엠마오에서 만났던 '그 꽃'이 바로 이 보라색 제비꽃이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누가 보아주어서 피는 삶도 아니요, 모든 것이 잘 마련된 환경에서 피는 삶도 아니요, 그저 내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삶이요, 당신이 심어주는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삶임을.
더딘 부활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부활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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