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마술라디오 본문

雜食性 人間

마술라디오

하나 뿐인 마음 2014. 10. 10. 08:48

정혜윤 지음. 한겨레출판.


정혜윤 피디의 책을 두 권이나 책장에 꽂아두고 아직도 둘다 읽지 못했으면서 또 다시 서점에서 집어 든 그녀의 책. "그의 슬픔과 기쁨"을 읽고 연달아 그녀를 또 만나고 싶었기도 했고, 그녀와 나의 코드가 맞는지 맞지 않는지 시험 삼아서라도 꼭 한 번은 읽어야겠다 싶었던 책이다. 그녀가 피디를 하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 중에서 그녀 마음에 각인된 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는데 조금 수다스러운, 그러나 미울 정도는 아닌, 세련된 스타일의 여인이 내 앞에서 끝도 없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저한테는 참을 수 없는 게 또 있어요. 저는 혼자 있을 때 드는 내 생각의 얕음에 가끔 어질어질해요.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열심히 들을 때, 혹은 열심히 책을 읽을 때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혼자 하는 제 생각은 가관이죠. 낮에 당한 모욕에 대한 반복적인 복수, 그때는 생각나지 않았는데 한참 뒤에야 생각나는 통쾌한 반박, 감상적인 소설에나 나올 법한 유치한 생각들. 그때는 내가 나를 할퀴죠.
 오로지 나만이 나를 할퀼 수 있는 시간이 있지요. 내가 나의 적이죠. 그때는 무한히 표피적인, 무한히 얕은....... 그래서 저는 열심히 내가 들은 것, 내가 읽은 것을 생각해야 해요. 내 일상의 경험과 마음속, 그 사이에 뭔가가 끼어들게 해야 해요.


듣고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 그녀의 직업이라지만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고된 일인가. 수도 없이 듣고 그 안에서 기도거리를 찾아내야하는 나의 삶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나의 경우야 역할의 만만치 않음보다 나 자신의 한계가 더 십자가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도 나는 신부님 두 분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 앉아 수도 없이 일어나 자리를 비우고 설거지를 하고 남은 음식들을 정리했다. 잘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 각자의 주제가 조금씩 비껴가는 이야기들, 부질없다 여겨지는 이야기들, 정도에 관계 없는 의견 주장의 연속...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든다. 그러지 말자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그 자리를 떠나고, 혼자의 시간을 좀 보낸 후에야 다시 동석할 용기를 낼 수 있다. 


나 자신이 유치하지 않다는 자만과 진부한 이야기들을 견디지 못하는 교만의 탑을 하늘까지 쌓고 있는 건 아닌가 늘 돌아보면서도 어질어질할 정도까지 쌓인 후에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 허물기 시작하는 나. 허물고 쌓고를 반복하며 내 삶을 보내겠지. 하지만 이런 내게도 삶을 치유할 이야기들을 쓰고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참내. 




마술 라디오

저자
정혜윤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4-05-1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마술은 무엇인가요?미처 다 쓰지 못한 이야...
가격비교


'雜食性 人間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의 기쁨과 슬픔  (0) 2014.10.16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0) 2014.10.14
소년이 온다  (0) 2014.08.12
남쪽으로 튀어  (0) 2014.07.17
와일드  (0) 2014.07.0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