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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남쪽으로 튀어 본문
오쿠다 히데오 장편소설.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은희경 작가의 '소년을 위로해줘'를 떠올리며 읽은 1권. 그리고 김의성 배우님의 멘션처럼 전혀 다른 맛의 2권. 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책은 '공중 그네'만 읽어본 사람이지만, 이 작가가 좋아질만큼 충분히 괜찮다 싶은 소설이었다.
"구로키라는 애, 부모는 있냐?"
"왜 그런 소리를 해?""초등학생 말투가 아니었거든. 혼자 사는 애 같은 느낌이 들더라."
언뜻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목소리로 그런 것까지 아는 걸까.
"그런 친구는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라."
"……."
어젠가 오늘인가 허핑턴 포스트에서 '동성 부부에 의해 길러진 아이들은 일반적인 건강, 가족의 화합 및 결속력이 전체 인구 평균보다 6%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들에 대한 그 어떤 교리적 판단은 차치하고, 나는 두려움을 넘어선 사랑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에도 자녀들을 길러도 되나 싶은 아빠가 나온다. 실제로 지로의 학교에서는 몇 번의 소동 끝에 지로를 아빠에게서 떼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소년의 성장 소설 같았던 1권에 나오는 지로의 가정적 환경은 세상의 시선으로는 그닥 바람직하지 않다. 운동권 출신에다 한량처럼 빈둥대기만 하면서 모든 체제를 거부하는 아나키스트 아버지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듯한 남편을 투덜대며 끝까지 응원하는 프롤레타리아 출신의 어머니. 유부남을 사랑하는 누나는 빼고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란 사람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인생'을 읽어내는 것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시선'까지 지니게 해준다. 멋지다!
"우린 아무 나쁜 짓도 안했는데, 무턱대로 공격하는 놈이 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야 이 세상에 착한 사람만 사는 건 아니라는 얘기지."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지로와 지로의 친구들을 둘러싼 학교 환경도 그닥 좋은 건 아니다.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학교 폭력이 지로와 친구들에게도 일어난다. 무턱댄 공격. 분명 있어서는 안될, 불의이지만 응당 있어야 할 것처럼 저지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지로는 지로의 세계에서, 아빠와 엄마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부당함과 맞서고 도전을 받는다.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모두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
지로가 만든 야구 방망이는 아이들이 다 좋아해서 모두의 공유재산이 되었다. 저학년용으로 가벼운 것도 만들어 줬더니 유헤이와 겐타가 완전히 지로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친형처럼 따랐다. 도쿄에서는 나이 어린 아이들과 놀아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묘하게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배팅 요령을 가르쳐주는 것도 재미있었고, 가르쳐준 대로 잘 쳐내면 내 일처럼 기뻤다. 싸우기라도 할라치면 큰형님처럼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무슨 운율처럼 중간중간 아빠랑 지로는 가끔 레슬링을 하는데, 그들의 삶도 레슬링처럼 굴러갔다. 결코 공평할 수 없는 힘의 기울기 그대로, 엎치락 뒤치락하며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자기만의 힘으로, 상대와 맞서 스스로 싸우는 법을 배워 나간다. 2권부터는 설정 자체가 너무 황당했고 결말마저도 당황스러웠지만 함께 사는 데에 필요한 것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하게 됐다. 국가를 떠나 스스로 표류되길 원했던 가족이 기묘하게 '함께' 사는 법을 알려 준다. 더불어 '제 눈 앞의 이익'이라는 게 얼마나 내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하지만 그것이 또 얼마나 가당찮은 허깨비 같은 것인지도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다.
"정말 남쪽 섬으로 오니까 갖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누나가 유쾌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 정치경제도, 국가도 필요 없겠지?"
"후아, 너무 어려운 얘기야." 모모코가 얼굴을 찡그렸다.
"혼자 살더라도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들면 정치경제가 발생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가도 자본가도 필요 없는 거야. 돈이 없어도 모두가 콘스턴트하게 가난을 즐기면 얼마든지 행복하지 않을까?"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아버지는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칼날을 벼리고 저항에 나섰다. 도저히 좋은 결과는 기대할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체포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경찰과 기업에 창끝을 들이댄 사람을 통쾌하다며 재미있어 하면서도, 그것을 막상 내 일처럼 생각해줄 사람은 없다. 텔레비전을 지켜본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싸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을 안전한 장소에서 구경하고 그럴싸한 얼굴로 논평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냉소를 던지리라.
대충 눈감고 살고 싶지 않는 건 오래된 내 소원이다. 사회를 바라볼 때에도, 나 자신의 한계를 바라볼 때에도 말이다. 잘 살지는 못해도 인정할 것, 손해를 보더라도 아닌 것에는 눈 질끈 감고서라도 아니다 말할 수 있을 것. 참아야할 때는 많겠지만 굴복하거나 인정하진 말 것. 헛헛한 웃음이 나오더라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적어도 약삭바르게는 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