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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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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食性 人間

와일드

하나 뿐인 마음 2014. 7. 1. 07:23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나무의철학.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사람은 어디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셰릴은 가장 밑바닥까지 형편없이 떨어졌다가 죽을 힘을 다해 그 낭떠러지를 다시 기어오른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는 등산화 한 짝을 잃어버린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방금 전 벗어놓은 등산화 한 짝을 그 나무들 사이로 떨어뜨린 터였다. 거대한 배낭이 엎어지는 바람에 녀석이 공중으로 튕겨져 나가더니 자갈투성이 길을 굴러 저쪽 끄트머리로 날아 가버린 것이다. 녀석은 몇 미터 아래 헐벗은 바위 위에 부딪혀 튀어 올랐다가 금세 저 아래 숲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찾아오는 일은 불가능했다. 헉. 나는 마치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숨을 들이켰다. 비록 황무지에서 38마일을 지내며 이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금 일어난 일의 충격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등산화가 사라지다니……. 말 그대로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남은 한 짝을 마치 갓난아이처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물론 그건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도대체 이걸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아닌가? 끈 떨어진 고아 같은 녀석에게 나는 아무런 동정심도 느낄 수 없었다. 그건 그냥 무겁고 커다란 짐짝일 뿐이었다. 은색의 금속 죔쇠에 붉은색 신발끈이 달린 갈색가죽의 라이클 등산화 한 짝이라니. 나는 남은 신발 한 짝을 온 힘을 다해 멀리 내던졌다. 그리고 녀석이 내 품을 떠나 저 멀리 무성한 숲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정작 그 오랜 시간 동안 머나먼 길을 걸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내가 처음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건 결코 시작도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이 여행은 내가 떠나고자 결심했던 그 순간 시작된 게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전부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4년 7개월 하고도 3일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미네소타 주 로체스터에 있는 메이요 클리닉에서 죽어가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말이다.


나는 변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 계획을 세우는 몇 개월 동안 나를 밀어붙이는 힘이 되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예전 모습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강한 의지와 책임감,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의욕이 넘치며 상식을 거스르지 않는 그냥 보통의 사람.

 

하지만 나는 내 육체적 나약함이나 이 길의 진면목은 전혀 계산에 넣지 않았다. 직접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사실들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걷겠다는 결심. 그해 여름 나를 그토록 사로잡았던 그 일은 내 인생의 다른 대부분의 일들처럼 아주아주 간단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종종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어쩜 이렇게 빠져나가거나 피할 방도가 전혀 없는 걸까.

 

내 복잡한  삶이 이렇게 단순해질 수 있다는 사시리도 나로서는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여행을 하며,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의 슬픈 일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 걸까. 아니, 어쩌면 내 육체적 고통에만 신경을 집중하느라 감정적 상처 같은 건 저 멀리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길에 들어서고 두 번째 주가 끝나갈 무렵, 나는 여행을 시작한 뒤로는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에 드는 성을 찾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스트레이드Strayed'라는 단어가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즉시 사전을 펼쳐 그 뜻을 찾아보았고 내게 어울리는 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갈 길에서 벗어나버렸다'는 스트레이드라는 단어의 숨어 있는 정의가 정확히 지금의 내 형편을 가리키고 있었고 동시에 어떤 시적인 운율과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제 갈 길을 벗어나 방황함. 바른 길에서 일탈했음. 길을 잃어버림. 멋대로 행동함. 엄마나 아빠가 없음. 집이 없음. 뭔가를 찾아 목표 없이 움직임. 벗어나거나 일탈함.

나는 길에서 벗어났고 정도(正道)에서 일탈했으며 방황하고 멋대로 행동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머지 한 짝도 저 너머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내 맨발을 오랫동안 가만히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러다가 떨어져나간 샌들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테이프로 때우기 시작했다. 바닥을 다시 붙이고 거의 떨어져나갈 지경이 된 고정끈도 테이프로 강화했다. 샌들 안에 붙어 있는 테이프 결 때문에 발이 쏠리지 않도록 양말을 신고 새로운 종류의 고통을 느끼며 걸음을 재촉했다.

 

 때때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내가 올라야 하는 하나의 긴 산길처럼 느껴졌다. 내 여정의 끝은 컬럼비아 강이지만 마치 어디 높은 정상에 올라야 여정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올라간다는 것은 그저 은유적인 표현만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나는 거의 언제나 엄청난 높이를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냉혹한 현실에 매번 거의 울 뻔했고 근육과 허파는 전력을 다해야 했다. 언제나 내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야 PCT는 내리막길을 보여주곤 했다.

 

그렇다면 내려가는 길은 또 어떤가. 잠깐 동안은 천국 같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그렇게 내려가다 보면 이번에는 그 내리막길이 엄청난 형벌처럼 느껴지고 급기야 지쳐버려서 다시 오르막길이 나오길 기도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리막길이란 오랜 시간을 들여 막 완성한 털실 스웨터의 실을 잡아 풀기 시작해 다시 원래의 털실 뭉치로 되돌리는 작업 같았다. 하지만 실제 PCT를 걷는 일은 스웨터를 짰다 풀었다 끝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다 잃게 되는 그런 여정이었던 것이다.

 

이곳의 옛 이름은 마자마였다지.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한때는 3657미터나 솟아 있던 산이었지만 그 심장이 움직이고 용암과 화산재와 부석으로 인해 황무지로 변했다. 그리고 다시 텅 빈 그릇처럼 변해 그 안에 물이 채워지길 수백 년을 기다렸다지. 그렇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없었다. 산도 황무지도, 그리고 텅 빈 그릇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모습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호수뿐이었다. 치유가 시작된 후 산과 황무지와 텅 빈 그릇이 변한 저 모습을 보라.

 

다 읽은지 오래되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나는 할 말을 잃었었다. 그리고 지금도 딱히 할 말이 없긴 마찬가지다. 셰릴이 그녀 자신과의 그 고되고 지난한 싸움을 마쳤을 때 나 역시도 진이 다 빠져버린 탓이다. 우연찮게도 마지막 보루라는 책을 읽고 바로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와일드였다. 결국은 내가 넘어야 할 산은 나 자신이다. 해는 뜨고 지고, 꽃도 피고 지고, 바람도 불다 멈추고, 비가 오기도 하고 눈이 내리기도 한다. 내가 뜨고 지는 건 내 몫이다. 그러니 다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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