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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내 안의 보루 본문

雜食性 人間

내 안의 보루

하나 뿐인 마음 2014. 6. 29. 08:58

서로에게 보루가 된 두 남자, 한상균과 김혁의 이야기.

고진 소설. 컬쳐앤스토리.


이 분들 이야기야 답답하고 억울함으로 치자면... 하늘을 뚫고도 남을 이야기이지만 속마음을 듣고 싶은 마음에 책을 들었다. 혹여나  쌍용차 고의부도와 회계조작의 진실에 대해 아직 모르시는 부분이 있다면 먼저 이 영상을 본 후에 책을 읽으시길 바란다.

http://youtu.be/zvSSh_jC7Ug 


소설 형식으로 이어지는 한상균 지부장과 김혁 실장의 이야기는 막 출소하여 다시 철탑 농성을 하러 그 높고 외로운 곳으로 오르던 이야기로 시작된다. 

"비겁자로 살아가는 게 차라리 내가 진 업보보다 낫다고 보았네. 

무수히 많은 이들의 얼굴이 내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박혀 있는데, 

난 그들을 보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네. 

그런데 나를 보러 온 수백 명을 보면서 도망갈 용기를 잃었네. 

이런 건 뭐라 해야 하나? 

가슴이 뛰면서, 울컥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일세. 

그들 속에서 내가 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네.

그런데 왜 그리 막막하던지 모르겠네.

난 다시 기댈 곳이 없는 허허벌판에 선 느낌이었지.

그래서 외로웠다네.

미안하네.

막상 올라가면 얼만 추울지, 가늠할 수 없겠지.

인생은 닥쳐 봐야 아는 거 아니겠나.

올라가네. 올라가 보겠네.

자네는 이해할 걸세.

살아 있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올라가서 죽은 자들의 영혼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그 일이라도 하고 올 테니, 그동안 몸 건강히 잘 있게.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두 사람과 그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아득하게 만들 질문.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한데, 왜 하필 고생길에 들어섰나요?"

누구보다 그들이 가장 이 질문에 답하고 싶겠지만,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고생길일테다. 비교할 순 없지만 나 역시 하고 많은 길 마다하고 굳이 수도자의 길을 걷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새운 밤이 얼마였나. 


우리야 기업 돌아가는 내용은 지식이 부족해서 아무리 읽어봐도 상세히 알 수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우수수 사람들이 떨어져 내리면서 스스로를 포기하는 걸 보며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광주 사태인 줄 알았던 영상 진압장면 http://youtu.be/cPDUVTGtp1E 을 본 후로는, 며칠 동안 잠까지 설칠 정도였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지옥까지도 내려갈 정도로 깊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소설은 이렇게... 너무나 담담하게 그 때를 기억했다. 하기야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을 그 장면을 다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지옥이리라.

공격은 파상적이었다. 헬기로 공중을 장악해 특공대를 투하하고,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올려 보내 대항하는 노동자들에 직접적인 맞대응을 하였으며, 사다리로 나머지 병력을 올려 보내 결국은 노동자를 완전 굴복시키려는 군사작전을 벌였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해결책이 여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고 있지만,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해결을 바라지만, 그들은 이렇게 희망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류를 찾았다! 하하. 그래서 내 몸에는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아. 철탑 위에서 새로 태어났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무적의 인간이 된 기분이다. 전류가 나에게 전해준 힘은 궁극적으로는 연대의 소중함이야. 청주, 인천, 부산 그리고 저 남쪽 끝 아니, 전국 곳곳에서 우리와 같이하려는 연대의 힘이 이곳으로 모여지고 있다. 그들이 가져다 준 도시락, 김치, 옷가지, 꼬깃꼬깃 전해준 소중한 성금! 마치 끊어지지 않는 전류처럼 하나로 흐른다. 어느 청년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쌍용차 투쟁은 결국은 패배한 것 아니냐고. 나는 그렇다고 그의 말에 동의했어. 그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하였지. 나는 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꼭 이기는 것만이 노동자의 대오를 묶어주진 않는다고 했지. 우린 졌기에 더 똘똘하게 성장하고 있을 거다. 나는 성장해서 돌아올 너를 기대했다. 우리는 찌릿찌릿하게 뭔가 통하는 게 있지 않냐!"


또 하나의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이야기였지만, 안타깝고 미안하게도 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못본 것이 아니라 안본 것에 가까웠다.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미안함을 또 한번 인정해야 했다.

피정을 떠나며 비행기 안에서 읽을까 싶어 챙겨간 책이었다. 하룻밤 만에 다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하나의 이미지가 자꾸 떠올랐다. 굳이 손잡지 않아도 한 편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와 가장자리를 둘러서서 거대한 원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또 하나의 무리의 이미지...가 지금도 나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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