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렌의 노래
- 박태범 라자로 신부
- 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 그녀, 가로지르다
-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 사랑이 깊어가는 저녁에
- 어느 가톨릭 수도자의 좌충우돌 세상사는 이야기
- 테씨's Journey Home
- 성서 백주간
- El Peregrino Gregorio
- KEEP CALM AND CARRY ON
- HappyAllyson.Com 해피앨리슨 닷컴
- words can hurt you
- 삶과 신앙 이야기.
- Another Angle
- The Lectionary Comic
- 文과 字의 집
- 피앗방
-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홍's 도서 리뷰 : 도서관을 통째로. : 네이버 블로…
- 행간을 노닐다
- 글쓰는 도넛
- 명작의 재구성
- 사랑과 생명의 인문학
- 자유인의 서재
- 창비주간논평
- forest of book
- 읽Go 듣Go 달린다
- 소설리스트를 위한 댓글
-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 리드미
- 여우비가 내리는 숲
- 인물과사상 공식블로그
- 개츠비의 독서일기 2.0
- 로쟈의 저공비행 (로쟈 서재)
-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 2.…
- YES
- Down to earth angel
- BeGray: Radical, Practical, an…
- newspeppermint
- 켈리의 Listening & Pronunciation …
- Frank's Blog
- 클라라
- Charles Seo | 찰스의 영어연구소 아카이브
- 영어 너 도대체 모니?
- 햇살가득
- 수능영어공부
- 라쿤잉글리시 RaccoonEnglish
- Daily ESL
- 뿌와쨔쨔의 영어이야기
- 교회 음악 알아가기
- 고대그리스어(헬라어)학습
깊이에의 강요
포맷하시겠습니까 본문
김미월, 김사과, 김애란, 손아람, 손홍규, 염승숙, 조해진, 최진영 지음. 한겨례출판.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 젊은 작가 8명 각자가 풀어내는, 기존의 어떠한 문학적 관성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동세대의 현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책.
책을 읽다 마음에 걸렸던 문장 하나를 튓했더니 "어떻게 지울까 보다는 무엇을 새로 깔 것인가가 더 궁금하네요."라는 멘션을 받았었다. 우리네 인생이 뭔가를 없었던 듯 완전히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난한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들은 아마 거의 모두가 '포맷'에 대한 은밀한 소원을 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포맷'만이 유일한 비상구인데 사방이 꽉 막혀 벽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삶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세월호 침몰 과정과 관직 임명과 사퇴를 거듭하며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우리나라 정부의 치졸함과 염원과 거짓이 뒤엉킨 6.4.지방선거를 지켜보았다. 그 즈음의 문장이...
"그때 처음으로 이런 의문을 품었던 것 같아. 이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낱말은 사전에 없을 거라는..." -마르께스주의자의 사전, 송홍규-
가장 아프게 읽힌 단편은 최진영의 '창'이었다. 자살한 소녀의 영혼이 자기를 죽이기 전에 먼저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학교. 누군가 죽어야 아이들은 안도하고 서로의 눈을 피하다가도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내일은 쟤를 죽어자는 눈짓으로 다른 이를 가리키기 바쁜 학교에 관한 꿈을 꾸는 주인공.
"당한 건 난데 왜 내가 도망치고 있느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그게 바로 내 인생의 본질 아닌가 싶다. 당하고 도망치고 억울해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지각만큼은 절대 해선 안 되는."
출퇴근 지하철 같은 삶. 어디로 도망칠 수도 없고 겨우 몇칸 옮겨가는 것 외에는 견딜 수 밖에 없는 공간. 모르는 이들과 어깨를 부딪히면서도 균형을 잡아야 하고 치한을 만나도 뾰족한 수가 없어 또 다시 겨우 몇 발 옮겨서 다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야 하고, 할 수 없어도 하겠다고 해야 하며,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하고, 내 방식과 기분이 아니라 조직의 그것을 따라야만 하는 게 이 사회의 도덕이자 상식이었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도 들고, 여기서 지면 안 된다는 오기도 생기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더럽고 치사하지만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던데...... 진자 그럴까. 오선배도, 옆자리 동기도, 유치한 아부나 부릴 줄 아는 정과장이나, 설마, 실장님도 나처럼 체념하고 견디는 중일까. 고비사막이나 남극 같은 데에도 왕따란 게 있을까? 사람도 별로 없고,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그런 곳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따돌리고 무시하고 패를 나누고, 그렇게들 살까. ...... 하긴, 이곳이라고 사막이나 남극과 다를 건 또 뭐가 있겠나.
"내가 고양이나 개였다면, 그러니까 그들과 다른 종족이었다면 어쩌면 그들도 나를 좋아했을 것이다. 내 성격이나 외모나 지위가 어떻든 아껴주고 보살폈을 것이다. 꼬질꼬질한 나를 보고 동기가 어머 예뻐라 하고 호들갑을 떨면, 다른 여사원들도 줄줄이 비엔나처럼 어머 가여워라, 어머 귀여워라, 어머 깜찍해라. 그랬을 것이다. 길을 떠돌다가 출근하듯 사무실에 들어서면, 기특한 고양이라며 쓰다듬어주고 밥 주고 내 자리를 마련해주면서 날마다 나를 기다리겠지. 그러다 하루라도 들르지 않으면 왜 안 오나. 어디 다친 건 아닐까. 나쁜 사람한테 해코지라도 당했으면 어쩌나. 걱정을 곱배기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도 고양이도 거북이도 원숭이도 아닌, 그들과 똑같은 인간이다. 때문은 그들은 나를 따돌리고 경멸하고 욕하고 미워한다. 내가 곧 자기니까. 쓰레기에 걸레에 곧 뒈져버릴 년이라고 치부해버린 내가 바로 자기랑 똑같은 인간이니까.
치유의 시작은 '사실 직시'라 배웠다. 하지만 사실을 직시한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우리들은 아닌 척, 없는 척 혹은 모르는 척 하며 살아간다. 공개하는 불행은 진짜 불행이 아니니까. 도저히 내보일 수 없는 각자의 아픔을 억지로 참아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결국 도달하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 우리는 삶의 어디쯤에서 맘놓고 숨 한 번 쉴 수 있을까. 내 삶의 조금이라도 이들을 위한 삶이 되길 바라며...
"불을 켜둘까, 잠시 생각하다 작은 스탠드만 켠다. 불켜진 타인의 창과 그 안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새삼스레 깨닫곤 했지. 아, 저기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누군가도 내 방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할까. 그들도 나처럼, 공개할 수 없는 하루치의 불행을 탈탈 털어 옷장에 개켜 넣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