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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본문
은희경 소설. 문학동네.
역시 은희경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이렇게 밀도 있게, 우아하게, 솔직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는 단연 은희경이 아닐까 싶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눈송이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조용히 세상에 쌓였다가 소리 없이 녹아버리는 아름다운 결정체들이다.
고독한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은 늘 오해한다. 그들은 강하지도 않고 메마르지도 않았으며 혼자 있기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해도 사람은 늘 자기만의 고독을 가지고 있다.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는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가까스로 그 뿌리를 지탱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건 아닐테지.
그녀는 자기 몸에 흉터가 하나도 없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 누구하고 장난을 치지도 않았고 그 장난으로 상처을 입은 일도 없었던 것이다.
방치하는 건 방향이 없다는 점에서 대처하기가 더욱 까다로운 폭력이었다.
세상이란 참, 의외의 지점에서 얽히기도 한다니까.
이원은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다. 거의 일과라고 할 수 있었다. 물건이 보이지 않으면 잃어버린 걸로 단정 짓고 찾아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뭘 잃어버리면 상실감이 아니라 좌절이 찾아왔다. 좌절의 연륜이 깊어져서 체념도 빨랐다.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느라 모두가 불편한 상태였다.
차라리 온 힘을 다하는 것이 힘을 빼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 같았다.
안 넘어지려고 버티면 다치거든요. 넘어지는 게 안전하다구요.
균형이란 여러 개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자기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하나만을 바라보는 게 균형이라니. 처음 듣는 소리지만 어쩐지 납득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고르게 뜨기가 가장 어려웠다. 원장이 말하는 힘 조절이었다. 좀 빽빽해졌다 싶을 느슨하게 하면 앞부분과 균형이 맞지 않았다. 다시 빽빽하게 뜨면 얼마 안 가서 다시 느슨하게 떠냐 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모양은 여지없이 망가졌다. 고르지 않다고 느꼈을 때 곧바로 포기하고 풀어버리는 게 최선책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아까운 마음에 몇 줄 더 뜨다보면 자연스러워질 거라며 헛된 기대로 자기를 속이게 마련이었다. 결국 스무 줄만 풀어도 되는 기회를 놓치고 백 줄을 다시 떠야 했다.
중간에 과감히 포기하고 풀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르친 상태로 어떻게든 이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돌이키기가 아까워 계속한 사람은 목도리를 일찍 완성하지만 모양은 엉망이다. 코를 빠뜨려 다시 이은 자국, 실을 끊어버린 자리에 튀어나온 매듭, 넓어졌다 좁아졌다 우스꽝스러운 모양. 그래도 자신의 선택이니 애정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할 것이다. 과감히 풀어버린 사람은 다시 시작하여 자신이 원하는 목도리를 완성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그 과감성으로 목도리 뜨기를 그만두어버렸을지도 모르고 또 곧 계절이 바뀔 테니 목도리 따위는 필요 없다고 결론지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