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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빠리의 기자들 본문

雜食性 人間

빠리의 기자들

하나 뿐인 마음 2014. 5. 17. 07:14

 

고종석 장편 소설. 새움.

 

우스개 소리지만 여고생 때나 아가씨 때 가끔 주고 받던 질문 중 하나가 "이상형이 뭐야?"이지 않을까 싶다. 여고생 때는 주로 연예인을 하나 골라서 답해야하는 질문이었고, 아가씨 때는 그게 뭐 그리 중요하나 싶어 웬만하면 나는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이긴 했지만 몇 번은 운율을 맞추듯 대답을 했었다, '똑똑하고 털털하고'. 굳이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면 나보다는 좀 더 아는 게 많아서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조언을 구해도 좋을 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었고, 감정적으로 폭이 너무 깊거나 넓으면(이건 나로서 족하므로) 내가 너무 힘들것 같아서였다. 이 두 조건을 갖추었다면 타인을 이해하는데도 너그러울 법하고 상황 판단에 신뢰가 갈 것 같아서이기도 하고. 물론 살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때의 내 생각은 그랬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고전적 가치는 상호 침투하면서 서로를 완전하게 하는 것이므로 그 둘을 기계적으로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일상의 삶이나 세상을 위한 기획에서 때때로, 아니 자주, 그 둘은 모순적이고 배제적이다. 나로서는, 그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평등 쪽에 서겠다. 한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을 옳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고, 좌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장이 바로, '지적인 수다와 지독한 사랑, 그리고 "빠리"'였다. 지독한 사랑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아, 사랑이라는 것의 기본 성질이 지독하다라는 뜻이라면 동의할 수 있겠다.) 지적인 수다에는 동의한다. 게다가 지적인 수다가 대화의 대부분이라 마음 편히, 쉽게 읽을 만한 거리는 아니어서 머리 아픈 날이나 피곤한 날에는 읽을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음도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빠리의 기자들'은 나와는 다소 동떨어진 사람들(어쩌면 늘 관심과 동경 대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얘깃거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올 법한 일상처럼 그려진 소설이었다. 감정보다 신념이 더 많이 개입되는 관계, 호불호의 영역 역시 사고의 비중이 높은 이들이 주고 받은 관계의 그물 같은 소설. 덧붙여 언어의 정확함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움이랄까, 하여튼 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나도 그녀에게 청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만 먹었다면, 그녀 역시 내 청혼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마음을 먹기엔 짐이 너무 많았다. 내게는, 참을 수 없이 무거운 허무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어른이었다. 나는 이미 서른다섯이었고, 그녀는 이미 서른일곱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고작 서른다섯이었고, 그녀는 고작 서른일곱이었으나, 우리들은 너무나 겉늙어버렸다. 늙은 사랑은 추하다, 고 우리는 둘 다 생각했다. 그러면 우리 둘 사이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너무 낡고 멋없는 말이기는 하나, 결국은, 우애라고, 연대라고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우리들은 풍매화였고, 바람은 우리들을 접근시켰으나, 맺어주지는 않았다. 우리들은 너무 늦게 접근했던 것이다. 너무 어른이 되어 접근했던 것이다.

 

책을 거의 다 읽었을 즈음, '마음만 먹었다면'이라는 말이 나를 흔들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정말 가능했었을까?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은 중학생 때부터 은밀히 간직해온 나의 장래 희망이었다. 어린 날 장래희망 란에 연필 눌러가며 썼던 '직업'들은 열이면 열(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나를 위한 직업이 아니라 상대(부모든 선생이든 친구든)를 고려한 직업이었으므로 평생 마음 깊이 품고만 살았던,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이라 비극미(悲劇美)를 더할 수 있었다. 밤새 시를 베끼던 중학교 시절, 방황하던 때늦은 사춘기 시절 옆구리에 끼고 살았던 소설들, 학교는 안가도 도서관에서 책은 읽으며 세상을 향해 반항하던 치기 등... 이 모든 것들은 그나마 내가 살아가도록 만들었던 다소 부정적인 힘이 아니었나 싶다. 인철이 자신에게 찾아온 다시 없을 사랑을 결국 '참을 수 없이 무거운 허무'로 인해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나만의 소망을 찢어진 연애 편지를 애틋하게 간직하는 심정으로 남은 삶을 살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물론 이제와 고백하건대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다. 위대한 문장을 토해낼 자신이 없었고, 치열한 삶에 나를 던지기엔 나의 허무 역시 너무 깊었었다.

 

책을 덮으며 생각도 많아지고 떠오르는 사람도 많았지만 모두 차치하고 반성한다. 요즘 책을 너무 안 읽었고 일기도 잘 안쓰고 가볍고 쉬운 책만 보고 싶어했다. 내 인간 관계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매사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안일하고 무기력했던 건 아닐까 반성한다. 자, 그러니 다시 시작하자. 아니, 마음을 먹어보자.

 


빠리의 기자들

저자
고종석 지음
출판사
새움 | 2014-02-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적인 수다와 지독한 사랑, 그리고 ‘빠리’ 파리에서 기자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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