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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로의 고백 본문

雜食性 人間

바울로의 고백

하나 뿐인 마음 2013. 10. 8. 07:16

 

C.M. 마르티니 지음. 바오로딸.

 

마르티니 추기경님의 성서묵상 시리즈 중 하나. 이제 절판되어 구입할 수 없는 책이지만 교회의 보물 중의 보물인 이 시리즈는 깊은 말씀의 묵상에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책은 사제들의 피정을 지도하기 위해 쓴 글을 모아 출판한 것이지만 평신도라고 해도 기도하고 묵상하며 사도 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어르신 성경 한 학기 강의 주제가 바오로이기 때문에 요즘 열악한 도서환경에도 불구하고 꼼짝없이 바오로 사도에 대한 독서, 공부 및 묵상을 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에 대해 공부하면서 최근에 가장 새롭게 와닿은 것은 그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로마교회에 '수인(囚人)'의 상태로 도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그동안 이루었던 많은 일들, 교회 특히 이방인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던 놀라운 위업들을 조금이라도 달성하기는 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의 모습으로 꽁꽁 묶인 채 수인(囚人)이 되어서 그곳에 갔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조차도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 내가 요즘 느끼는 갑갑함,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의 메마른 상태가 이 수인(囚人)이라는 단어를 만나자마자 나는 내가 '묶여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음을 알아챘었다. 이 답답함, 불의하게 여겨지는 많은 상황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벽 앞에 서서 되돌아가지도 못해 망연자실해 있는 나의 상태. 하지만 이것 역시 나를 도달해야할 그 곳에 데려가기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과정이라니.  

 

"하느님의 활동임을 드러내는 사건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그 일 안에 자신을 완전히 몰두시킨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섭리는 바로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며 이러한 몰두에 대해 책망하시지 않는다. 바오로가 이런 시련을 체험했고, 자신의 본성에 사로잡혔었다면 우리도 그런 것을 거쳐야 하고 체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짧은 삶을 되돌아봐도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모든 고통과 시련이 나를 무작정 키워낸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을 온전히 아파하며 겪어내면서 기도로써 받아들인 후에 내가 포기하지 않고 선택한 방향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었음을 어쨌든! 알아채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내 앞에 닥쳐온 거친 파도를 '고맙습니다'하며 넙쭉 받아 안을 만한 큰 그릇의 신앙인으로는 완성된 것은 아니다. 

 

회심이란 것이 지금까지 해오던 활동의 내용과 목적만을 바꾸어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참된 회심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새롭게 창조해주시고, 모든 것을 주님을 통해서 보도록 해주셨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자신 안에 깊이 받아들이고 통합하기 위해 먼저 서서히 섭취하는 기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주님을 통해서 본다는 것... 내 주위에서 요즘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지켜보며 문득 '내가 느끼는 이 답답함이 어쩌면 나를 보호하는 순기능 작동 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선교의 임무를 띠고 파견되었지만 사도 바오로처럼 수인(囚人)의 몸으로 선교지에 도착하게 될 때도 있는 법. 많은 일보다 그저 견디는 일이, 완전한 수동태의 삶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과정이 내 수도 여정의 일부라면, 그리고 바로 그것이 다름아닌 지금 이 순간이라면... 나는 받아들여야겠지.

 

"하느님의 활동임을 드러내는 사건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그 일 안에 자신을 완전히 몰두시킨 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섭리는 바로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며 이러한 몰두에 대해 책망하시지 않는다. 바오로가 이런 시련을 체험했고, 자신의 본성에 사로잡혔었다면 우리도 그런 것을 거쳐야 하고 체험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때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그런 때야말로 하느님의 신비가 계시되는 때이며, 다마스커스의 길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던 때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획에 눈을 떠야 할 사람이다. 자비의 길이 바오로에게 주어졌듯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것이다. 사도직 수행에 따르는 모든 작고 큰 어려움 안에 항상 자비와 구원의 말씀이 함께 계신다.

 

바오로에게 회심의 때가 주어진 것은 바오로가 단순히 죄인의 상태였기 때문도 아니고 바오로가 주님의 그 크신 은혜를 무상으로 받을만큼 조건?을 갖추어서도 아니다. 바오로는 흠없는 사람이었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고, 야훼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뜨겁게 불타오르던 사람이었다. 다만,  자신이 흔들림 없이 잘 가고 있다고, 누구보다 열심히 온전히 하느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조건이라면 조건이다. 회개로의 초대를 받기 위한 조건은 큰 죄라기 보다, 은총이 주어질만큼 충분히 노력한 것에 대한 대가라기 보다 차리라 '교만'이다. 나는 지금 너무 잘 살고 있다는 '영적 자만' 혹은 '자기 위안' 말이다.

 


바울로의 고백(성서묵상 5)

저자
C.M.마르티니 지음
출판사
바오로딸 | 1989-10-0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
가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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