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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농장소임 본문

바람은 불고 싶은대로 분다

농장소임

하나 뿐인 마음 2013. 6. 10. 07:04

2005.05.22 14:55
농장수녀로 돌아온지 며칠이 지났다. 비록 오전에는 신학원을 다니고 오후에만 출근을 하지만서도... 예전같지 않은 몸을 이끌고 땀흘려 일하며 자연 속에서 섭리를 알아뵙는 체험은 매우 소중하다. 가기 전에 심어놓은 옥수수들이 얼마나 귀엽게 자랐는지, 감자랑 콩들이랑 싹이 나서 파릇파릇한 잎을 다투어 세상에 내어놓았다. 특히 감자를 심었을 때는 며칠동안 몸살을 했다. 온데가 쑤셔서... 농부님들께 고개 숙여 인사해도 모자랄 판에 과일수입까지 개방한다지..
가장 놀라운 건 매실나무다. 한창 꽃이 피었을 때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비닐 깔면서 우짜다 건드리기라도 하면 우수수 떨어지는 청아한 꽃이파리들이...그때는 바람에 날리는 꽃잎마저도 아쉬워했었는데, 지금은 퍼어런 매실들이 주렁(이런 표현으로도 모자란다)주렁 달렸다. 징그러울? 정도로. 근데 콩을 심다말고 매실 나무 밑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꽃마다 열매를 맺었구나' 아름다움이 스러져야만 열매를 맺는다는 진리. 죽어야만 산다는 그분 말씀. 자명한 진리. 내 지난 세월에서 발견되는 '썩어야 싹을 틔우고, 흔들려야 뿌리는 내리고,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 조금은 아프게 깨달아야 하는 것들. 밑둥치 부분에 소복히 떨어진 열매들. 미처 크지 못하고 그만 떨어져버린 그 열매들조차 나를 숙연하게 했다. 그 모든 열매들을 모두 주렁주렁 달고는 싱싱한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매실나무는 스스로 열매솎기(자기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고 떼어내버리는 일종의 죽음이다)를 감행한 것! 보라, 벗어버려야 함을 깨닫고 생명을 내어놓은 매실나무는 그로 인해 땅과 자신을 살찌운다. 떨어진 무수한 매실들은 땅에서 썩어 흙을 비옥케하고 다시 나무(자기자신)을 살찌운다. 부활이다. 농사일을 하는 나는 참 행복한 수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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