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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64)
깊이에의 강요
정호승 잠든 아기의 손톱을 깎으며창밖에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본다별들도 젖어서 눈송이로 내리고아기의 손등 위로 내 입술을 포개어나는 깎여져나간 아기의 눈송이같이 아름다운 손톱이 된다 아가야 창밖에 함박눈 내리는 날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린다흘러간 일에는 마음을 묶지 말고불행을 사랑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했다날마다 내 작은 불행으로남을 괴롭히지는 않아야 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이서로 고요한 용기로써사랑하지 못하는 오늘밤에는 아가야숨은 저녁해의 긴 그림자를 이끌고예수가 눈 내리는 미아리고개를 넘어간다 아가야 내 모든 사랑의 마지막 앞에서너의 자유로운 삶의 손톱을 깎으며가난한 아버지의 추억을 주지 못하고아버지가 된 것을 가장 먼저 슬퍼해보지만나는 지금 너의 맑은 손톱을사랑으로 깎을 수 있어서 행..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저문 바닷가에 홀로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정호승
누가 내 속에 가시나무를 심어놓았다 그 위를 말벌이 날아다닌다 몸 어딘가, 쏘인 듯 아프다 生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잉잉거린다 이건 지독한 勞役이다 나는 놀라서 멈칫거린다 지상에서 생긴 일을 나는 많이 몰랐다 모르다니! 이젠 가시밭길이 끔찍해졌다 이 길, 지나가면 다시는 안 돌아오리라 돌아가지 않으리라 가시나무에 기대 다짐하는 나여 이게 오늘 나의 희망이니 가시나무는 얼마나 많은 가시를 감추고 있어서 가시나무인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나를 감추고 있어서 나인가 가시나무는 가시가 있고 나에게는 가시나무가 있다. 천양희 (1942~)
4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슬픔을 위하여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첫아이을 사산한 그 여인에 대하여 기도하고불빛 없는 창문을 두르리다 돌아간그 청년의 애인을 위하여 기도하라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하다나는 오늘 새벽, 슬픔으로 가는 길을 홀로 걸으며평등과 화해에 대하여 기도하다가슬픔이 눈물이 아니라 칼이라는 것을 알았다이제 저 새벽별이 질 때까지슬픔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말라우리가 슬픔을 사랑하기까지는슬픔이 우리들을 완성하기까지는슬픔으로 가는 새벽길을 걸으며 기도하라슬픔의 어머니를 만나 기도하라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