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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본문
안도현 아포리즘. 도어즈. "삶이란 무엇인가. 온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사과나무에 매달린 시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텃밭에 심어 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마침내 그 매운 냄새릉 퍼뜨리고야 마는 것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는 것." "꼬리 한쪽을 떼어 주고도 나뒹굴지 않는 도마뱀과 집게발을 잃고도 울지 않고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바닷게를 보며 언젠가 돋아날 희망의 새 살을 떠올리는 것." "세상에 태어나 조용히 녹슬어 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에 태어나 조용히, 아주 조용히...... 녹슬어 가는 일은......" "누군가가 지구를 움직이겠다고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누군가가 손에 들었던 돌멩이 하나를 땅에 내려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뉘우침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순도 백퍼센트여야 한다. 그럼에도 뉘우침은 뼈가 아프도록 간절하지도 않고, 다만 묽고 싱거울 때가 많다." "사람은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길 때 구두를 향해 불평할 줄은 알지만, 그 물집이 굳은살이 되었을 때는 구두의 존재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지낸다. 중요한 것은 구두가 사람의그런 인식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른다. 흐름을 멈춘 강이란 이 세상에 없다. 속이 깊은 강일수록 흐름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우는 사람을 달래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는 사람을 만났을 때 달래고 싶다면, 그 옆에서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산소가 모자란듯 숨이 찼던 요즘. 절박한 심정으로 안도현 시인의 책을 집어 들었다. 날선 세상에서 날선 채로 밤을 지새워야겠다 싶었던 요 근래, 아무리 눈 부릅뜨고 당분간은 이렇게 살고 싶다 주문 외우듯 나를 몰아부쳐 봤지만 역시나 시집으로 산문집으로 자꾸만 눈길이 기우는 나를, 나 스스로가 안쓰러워져서... 시집은 아니다만 시인의 글이, 시인의 마음이 나를 좀 가라앉혀 준 건 사실이지. 요즘 책이 너무 밀렸다. 하긴 언제 책이 밀리지 않았던 적이 있기나 했나 뭐. 부랴부랴 다음 책을 꺼내놓은 채 마무리를 하긴 했지만, 우리 삶엔 이렇게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절실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여튼.... 중학생 땐가, 별밤지기에게 싸인을 받았던 시집 말고는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직접 싸인을 받은 책이다...ㅎㅎ |
201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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