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깊이에의 강요

마르 9,38-43.45.47-48 나의 손, 나의 발, 나의 눈 (나해 연중 제26주일 레지오 훈화) 본문

마르코의 우물/마르코 9장

마르 9,38-43.45.47-48 나의 손, 나의 발, 나의 눈 (나해 연중 제26주일 레지오 훈화)

하나 뿐인 마음 2024. 9. 22. 10:17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마르 9,42-43)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하시며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먼저 꺼내신 후에 '나'를 죄짓게 하는 경우를 말씀하시는데요, 세 가지나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모두  '나'입니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나의 손, 나의 발, 나의 눈. 나를 죄짓게 하는 나의 손, 나를 죄짓게 하는 나의 발, 나를 죄짓게 하는 나의 눈. 차라리 잘라 버리는 것이, 빼 던져 버리는 것이 낫다 하시며 단호하게 이르십니다, 내가 스스로 죄짓지 않도록.
 
우리는 내가 남에게 가하는 것은 거의 생각하지 않고, 남이 나에게 가하는 것은 수도 없이 생각하고 탓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의 유혹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남을, ‘내’가 나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남이 나에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나를 수도 없이 넘어지게 하는 것은 대부분 '나 자신'임을 깨달으라는 것이 아닐가요. 필요한 것은 남 단도리 말고 내 단도리입니다. 나 말고 남을 탓하고 싶은 마음 역시 유혹이지요.
 
이번 주 복음에서는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 ‘저희’(자신들을 포함시킴)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일을 못 하게 막으려는 제자 요한이 나옵니다. 이는 ‘예수천국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말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당연하게도 예수님은 요한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그들을 “막지 마라”고 말씀하시지요.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가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소속’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입니다. 천주교에 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행하는 ‘행동’라는 겁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물 한 잔이라도 줄 줄 아는 ‘행동’, 즉 실천이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끕니다. 죄 짓지 않는 사람처럼 멀쩡하게 보이는 겉모습이 아니라, 아무리 사사로운 죄라도 짓지 않기 위해 단호하게 거부하고 선과 정의를 ‘선택’하는 ‘행동’, 즉 실천이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끕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