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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본문
강지나 지음. 돌베개
10년에 걸쳐 작성된, 가난을 짊어진 아이들의 성장 기록. 이 책은 실상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니 우리가 그저 ‘돈’, ‘도움’이라고 쉽게 말하거나 탓하지 못하게 만든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던져야 할 단 하나의 물음이 담긴 책’이라는 은유 작가의 소개말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는데, 당장 내 발 밑에 구멍이 뚫리진 않았지만 우리는 함께 무너지고 있음을 알아채고, 아이들 아래 뚫린 구멍에 눈을 돌리는 일이 이젠 ‘도움’을 주는 일이 아니라 ‘나의, 우리의 일’이라는 걸 다시 알려준다.
p.0
"공정한 어떤 잣대로 재봐도 미국 최고의 아동살인범은 가난이다.
- 테리사 푸니시엘로(미국 복지권리운동 조직가)"
p.38
"경제학자로서 평생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온 아마티아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라고 설명했다. 빈곤 상태로 인해 건강한 관계 형성과 욕구 발현의 기회가 수없이 좌절되고 박탈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행동을 보인다. 빈곤 대물림은 이런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다. 특히 아동기에 문제행동이 만연한 환경 속에 노출되면 문제행동은 빈곤을 대물림하듯 학습을 통해 대물림될 수 있다. 소희는 할머니, 어머니, 자신으로 이어지는 알코올중독을 얘기 했다. 이는 한 명의 개인이 겪는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조건과 환경, 학습, 습속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어져 내려오는 악순환의 고리인 셈이다."
p.47
"친척들 간의 불화와 다툼, 왕래 없음은 여러 가난한 가족들 내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사회적 자본이 더욱 빈약해지는 결과가 되는 셈이다."
p.94
"이렇게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이 많다 보니 '사회복지'는 보편적이고 제도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시혜적' 시선을 담아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 런 구조는 빈곤층이 직접 '가난을 증명'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회 풍토를 만든다."
p.97
"성찰하는 힘은 인간이 사회적•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외적인 지식(예를 들어, 학력)과 외형적 모습(예를 들어, 재산, 직장)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평가하면서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도, 즉 성찰하는 힘에 대해서는 참 소홀하다고 생각한다."
p.187 ~ p.188
"가난한 부모가 자녀들을 봐줄 여력이 없을 때 아이들을 도와줄 만한 사회시설은 있었는지, 아이들에 대해 부모만 통제를 해야 하는지, 학교 당국은 아이들이 범죄에 빠질 때까지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아이들이 범죄에 쉽게 접근할 만한 사회환경은 아니었는지, 초범을 저지른 후에 교정 당국은 아이들의 교정과 사회 복귀를 위해 충분한 역할을 했는지 묻고 싶다."
p.223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겨우 그것밖에 꿈이 안 되냐", "대학은 가야 한다", 더 크고 긴 안목으로 생각해야지", "현재에 안주할 거냐"고 얘기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이들이 장기적인 안목에, 바람직한 좋은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지 않았고, 실제로 이들이 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현실적인 미래를 그리는 청소년들을 오히려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닐까?"
p.256
"가난한 가정의 학교 밖 청소년들은 과도기에 있으므로 충분한 돌봄과 관심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성장기 내내 믿음과 애착을 주는 돌봄이 부족했다면, 그래서 가정과 학교 밖에서 방황했다면, 청년기에 그런 요구를 표현하면 받아줄 사회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혜주의 사례에서 보듯이 누구나 언젠가는 방황을 끝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이나 과오, 실수에 대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 다시 힘을 내볼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할 역할이다."
p.257 ~ p.258
"이제 빈곤은 세대를 이어 빈곤이 대물림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그 자체이다. 게다가 빈곤은 더 이상 저소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 빈곤, 문화 빈곤, 주거 빈곤 등 불평등의 다양한 양상들은 저마다 현실 속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양태와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들은 언뜻 보면 파편화되어 있고 개별적인 사안인 것처럼 보인다. 최첨단 정보 통신 기술에 힘입어 SNS에 올라오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AI를 활용한 생활의 편리성 덕분에 가난은 이제 사라진 옛날 문제인 듯 보이기도 한다. 분명 빈곤으로 인한 불평 등은 도처에서 작동 중인데 우리는 감지하지 못한 채 가난은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은폐되고 그 검은 그림자는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셈이다."
p.258
"빈곤은, 특히 세대를 이어 빈곤이 대물림되는 문제는 사회 전반에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노동 가치보다 자산 가치가 훨씬 높은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기반으로, 50퍼센트에 육박하는 나쁜 일자리가 임금 불평등을 형성하면, 경쟁과 선별 위주의 교육 제도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부실하고 편협한 복지 제도가 안전망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데서 빈곤 대물림은 구조화되고 있다."
p.259
"건강한 사회라면 '개인의 안락'을 추구하는 것 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빈곤이 대물림되는 불평등한 사회 안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사회에서 낙오된다는 사회 풍조가 생겨난다. 결국 청(소)년들은 피로감과 열패감에 쌓여 어떤 미래나 전망을 꿈꾸기 위해 에너지를 쓰지 못하고 자기 보호에만 급급해진다."
p.260
"불평등한 사회에서 빈곤은 단순히 경제적 수치에 해당하는 저소득의 문제가 아니고, 그 영향력이 삶의 전반에 미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 실현이 번번이 좌절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공부하고 싶어도 가정형편 때문에 못 하고, 안락한 주거환경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지만 항상 불안에 휩싸여 낮은 삶의 질을 경험해야 하고,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만나 배우고 각성해서 어떤 꿈을 실현하고 싶지만 주위에서 그런 사람을 접해보지 못하는 삶. 또한 이 삶의 패턴이 조부모, 부 모로부터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왔다는 것을 경험하는 삶. 이러한 과정이 누적되면 사람은 일단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사회적 존엄성에 침해를 입고, 이렇게 침해된 존엄성은 주체를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며,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질곡이 된다. 결국, 오랜 시간 축적된 빈곤은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고, 거기서 만들어진 능력을 발휘해 사회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행복감을 추구하려는 가능성을 모두 훼손한다."
p.261
"빈곤 대물림은 생태계 재앙과 전염병의 팬데믹을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문제로서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영원히 불평등의 나락 속으로 우리 아이들을 처박아버리는 것과 같다."
p.262
"사회에 불평등한 현상들이 쌓이고, 이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 사회 전반에 누적되면 누구에게도 안전하고 좋은 사회란 있을 수 없다."
p.270
"나는 빈곤가정 청소년들이 자아정체감은 진로 탐색을 통해 형성해야 하고, 진로 탐색을 위한 활동을 많이 수록 성찰하는 힘을 역동적으로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빈곤가정 청소년들에게는 취약한 가정을 대신해서 우리 사회가 이런 체계를 잘 갖추고 있어야 빈곤으로 인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걸음이라도 뗄 수 있다."
p.276
"청년 빈곤 문제는 한 세대 내에서 보면 불평등이자 과잉경쟁의 문제이고, 국가적으로 보면 산업구조의 재편 문제이며, 세계적으로 보면 저성장의 문제인 셈이다. 이는 10년, 20년 뒤 지금의 청년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고 중심 세력이 된다는 점에서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다루기에 문제가 복잡하고 규모가 거대하기 때문에 섣불리 의견을 내놓기도 어려운 주제이다."
p.277
"청년 세대는 사회 전반적인 불평등과 다차원의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이다. 이들을 위한 사회 정책은 '가난을 증명하고 신고해야 하는' 선별적 방식이 아니라 청년 세대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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