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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사제를 사제이게 하는 것, 수도자를 수도자이게 하는 것 본문

vita contemplativa

사제를 사제이게 하는 것, 수도자를 수도자이게 하는 것

하나 뿐인 마음 2023. 3. 21. 23:01

  만날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신부님들이 있는데 그들 중 하나인 오늘 만난 신부님의 이야기가 너무 감동스러웠다. 학사님이었을 때 만난 날 첫인상부터 '이 사람은 진심이구나.' 싶었는데 신학생 시절도, 사제가 되고 난 후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진심을 다해 살고 있는 사람.

  사제의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이끌기도 하고 밀어주기도 하려면 '신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무얼 좀 더 배워야 할까 선배 사제에게 물었는데 그 선배 사제의 대답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뭘 더 배우는 것보다 사제의 삶에 더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 지금이야말로 성경 통독을 제대로 해보고, 학위를 따는 공부가 아니라 히브리어를 공부하면서 원어 성경을 읽어본다던가, 환경 문제에 귀를 기울여 <찬미받으소서> 등을 깊이 있게 읽고 가톨릭적 환경 운동을 고민해 본다던가 하는 것이 상담 기술을 더 배우고 운동에 많은 시간을 쓰고(단순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니겠지.) 취미 생활을 고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그런 말을 해주는 선배 사제와 그런 말을 마음에 품고 렉시오 디비나에 더 공을 들이는 등 더 근원적인 사제의 삶에 충실하려고 마음먹는 젊은 사제. 너무 감동적이었다. 모두가 오르고 있는 그 사다리에서 잘 올라가기보다 꿋꿋하게 사다리를 지탱하는 삶을 택하겠노라 하는 마음. 여기로 가는 것이 바른 길이다 외치거나 나의 길이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니 나를 따르라거나 하지 않고 사람들이 하느님께 오르도록 묵묵히 사다리를 세우고 지탱하는 것에 남은 사제생활을 걸어보려는 마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크게 울리는, 장중한 선언 같았다.
 
  세상 사람들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의 사람들도 점점 수준이 높아간다. 당연한 수순처럼 우리들도 뭔가를 좀 더 배우고 닦아서, 세상에 무지몽매한 상태에서 '신'만 외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기울이는 노력 중엔 책 읽기와 시사 주간지 구독이 있다. 바빠서 늘 뒷전인 악기가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오르간 연습도 하고 혼자서 끙끙 거리면서 ppt를 공들여 만들고 간단한 기계 조작들도 관심 있게 보려고 한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잘 이해시키고 전달하기 위해서 배우고, 세상과 함께 호흡하지 못해서 나도 모르게 놓치거나 오해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놓치지 않는 렉시오 디비나이고, 공들여 바치는 공동 기도이고, 하느님과 나만의 시간인 개인 기도이다. 수도자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인간적으로 부족하더라도 끝끝내 수도자로 남기 위해서는 적어도 껍데기만 수도자여서는 안 될 일. 
 
  작년에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짙은 어둠 뿐인 동굴을 홀로 끝도 없이 걷는 것 같았다. 어떤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어둔밤을 보내며 내가 택한 마지막 노력은, 온 정성을 다해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이었다. 피곤해서 목소리조차 내고 싶지 않을 때라도 내 기도 소리만큼은 맑은 노래가 되도록, 모든 것에 지쳐 고개를 드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성무일도서에 눈을 고정시키고 쉼표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할 것. 혼자서 바치는 기도의 시간이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때는 5분이라도 더 일찍 공동 기도에 가고 영적 독서를 하는 것도 힘들어지면 다음 주 전례력을 미리 살피고 전례를 준비하며 성무일도 책으로 영적 독서를 했다. 예쁜 노랫소리는 아니어도 투명한 기도가 되길, 메마른 영혼이었어도 진심을 담길, 초라한 모습으로라도 그분 앞에서 일어서고 앉길, 내 기도가 되지 않을수록 시편 기도에 목소리를 싣길... 그런 시간을 보낸 후에야 나는 서서히 빛 앞에 당도했다. 공동 기도는 수도자가 살아가기 위한 들숨날숨이라는 걸 그때 또 한 번 알 것 같았다. 
 
오늘 만난 이 신부님도, 예언자 같은 선배라던 그 신부님도, 나도
바른 길, 좋은 길이 아니라 '나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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