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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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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食性 人間

노랜드

하나 뿐인 마음 2022. 9. 8. 23:02

천선란. 한겨레출판.

작가는 행복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나는 지키고 보살피는 이야기를 읽었다. 작가는 읽고 나면 지치는 책이 될까 봐 두렵다고 했지만 나는 질긴 생명에의 의지를 느꼈다. 연명이 아니라 살아내고 싶은 의지. 지키고 보살펴야 할 사람들을 위해 살아내고 싶었다. 작가는 우주를 떠올릴 때마다 고요한 그곳에 홀로 시끄럽게 돌고 있는 지구가 좋다고 했고, 나도 그렇다. 하늘을, 도래할 세상을 생각할수록 지구가 좋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 작가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 시대의 아픔을 비켜가지 않았기에, 서둘러 다음 세상에 도달하려 하지 않았기에, 철저하게 이 시대를 살아냈기에 쓸 수 있는 이야기들. 천선란 작가의 두 번째 책을 이제야 만났지만, 서둘러 찬사를 보낸다.


p.11
"짝을 짓는 사람들로부터 멀찌감치 물러나 있던 강설은 맨 마지막 줄에 혼자 섰다. 다행히 인원은 홀수였다. (‘흰 밤과 푸른 달’ 중)"

p.23
"자신이 지키기 위해 똑똑해진 것처럼 명월은 지키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강해졌다는 걸 잊고 있었다. (‘흰 밤과 푸른 달’ 중)"

p.48
"나는 집이 무서웠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집은 서러웠고, 함께 있으면 불편했지만 혼자 있으면 눈물이 났어. 그러니까 나는 힘을 버티는 데 쓴 거야. (‘흰 밤과 푸른 달’ 중)"

p.181
"담담하게 그때의 일을 말할 수 있다는 건 이미 한 번 그 세계를 밟은 사람만이 가능했다. (‘이름 없는 몸’ 중)"

p.223 ~ p.224
"나는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조난자였다. 배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거센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깨질 듯한 머리를 움켜잡고 잔뜩 웅크려서는 잠잠해져라, 잠잠해져라, 하고 중얼거렸다. (‘이름 없는 몸’ 중)"

p.253
"우리는 강하게 태어났지만 악하지 못했다. 강하다는 것은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악했다면 너는 네 아비를 찔렀겠지만, 너는 강했기에 버텨서 살아남았다. 세상을 일부러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모든 상황을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가끔은 그게 미칠 듯이 억울했지만, 그래서 ‘차라리 네가 악했다면’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나는 네가 악하지 않아서 좋았다. 너는 정말이지 강해서, 멋있었다. (‘이름 없는 몸’ 중)"

p.265
"내가 붙을 수 있는 육신은 속된 말로 기가 약해야 했는데 기가 약한 사람은 대체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돈이 많다고 기가 세지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악해지고 못돼지면 영혼에서 악취가 났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악하고 못됐다. 그래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귀신이 착한 사람만 데려간다는 말은 그런 의미였다. 귀신도 악취가 나는 영혼에는 붙기 싫으니까. (‘-에게’ 중)"

p.388
"사고는 한순간일 수 없다. 사고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차분히 그 지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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