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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대도시의 사랑법 본문
박상영 지음. 창비.
은희경 작가의 <중국식 룰렛> 이후 도전해 본 오디오북.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다 하고 작가 이름도 자주 본 것 같아 골랐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려웠다. 수작업을 하는 동안 들으려고 선택한 오디오북이었는데, 이게 눈으로 읽는 것과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내 삶이 이런 삶인지라 많이 감안했다 하더라도, 소화가 가능한 수준 이상의 이야기와 단어들. 퀴어소설이어서라든가, 내용이 별로라든가, 재미가 없다든가 같은 말이 아니다. 내가 듣기엔 너무 적나라하고, 한편으로는 어렵고, 솔직히 부담스러운 이야기였다. 몇 번을 돌려들어도 도저히 귀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딴에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마저도 속단이자 장담이었단 걸 인정해야 했다. 하다하다 부커상 후보작과는 내가 잘 맞지 않는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10여 년 전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도 내내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스스로 물었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내 삶과 너무 멀어서인가.
멀찌감치 들리는 음악처럼 '틀어두는' 데에 의의를 두고 듣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 책은 그 어느 책보다도 남자니 여자니, 사랑이니 변덕이니, 옳은 일이니 해선 안 되는 일이니, 기성 세대이니 요즘 세대이니...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구나. 정의도, 속성도, 내 기준도, 심지어 내 종교와 가치관마저도 온전히 내려 놓고 읽어야 하는구나. 그리고, 비단 책만이 아닐 것이다.
서둘러 결론을 지어보자면, 내 삶이 협소해서이다. 이 책이 내게 건네는 말은 안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충분하다 여기고 멈추지 말아라 같다. 그러니 좀 더 정신 차려서 좁디좁은 내 삶, 내 경험, 내 가치관을 치우고 또 치우고, 벗겨내고 또 벗겨내며 살아야겠다. 요즘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읽고 있는데, 이 책도 그렇고, 나는 정말 이다지도 좁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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