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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어려운 성경의 해석 본문

雜食性 人間

어려운 성경의 해석

하나 뿐인 마음 2021. 12. 27. 23:40

안젤름 그륀 지음. 허규 옮김. 성서와함께.

수련소 시절에 신부님 책을 많이 읽고 접해서 그런지, 여러 권을 읽고 나면 책이 좀 비슷하게 읽혀서 그런지 언젠가부터 그륀 신부님 책을 읽지 않았다. 이곳에 다시 온 김에 바오로딸 서점에 들렀다가 오랜 만에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얼른 데려와 저녁기도 전 독서 시간 동안 잘 읽었다.

본디 남의 묵상이나 성경에 대한 개인적 해석은 내 삶에 굳이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토마스 뢰머의 <모호하신 하느님>을 읽고 난 후라 그런지 처음엔 많이 당황스러워서 ‘서문’ 정도만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게도 서문이 딱 좋다 싶었고.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긋고 싶은 밑줄은 점점 늘어났고, 말씀에 대한 해석보다는 그륀 신부님의 말씀 자체가 좋았다. 송봉모 신부님과 느낌이 되게 비슷한데, ‘이렇게까지’ 싶다가도 따뜻하고 반듯한 말에 자꾸 위로를 받게 된달까. 이건 아마, 책에서 신부님의 삶과 태도가 내게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읽어보셔도 좋을 거예요^^


p.12 ~ p.13
"“하느님의 말씀은 구원을 가져올 때까지 당신의 의지에 맞섭니다. 당신이 자신의 적으로 남아 있는 한,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의 적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친구가 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과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만일 당신이 자신에 대해 관대하게 행동한다면, 곧 당신이 자신의 친구가 된다면, 당신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의 마음 안에서 솟아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마음으로 당신 자신을 느끼게 해줍니다."

p.18 ~ p.19
"예수님의 말씀은 나를 도전하게 만듭니다. 말씀은 삶에 대한 나의 시각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 질문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나의 시야를 열어주어서, 내가 지닌 착각과 환상을 꿰뚫어보게 하고, 하느님께서 뜻하시는대로 나의 삶을 바라보게 합니다."

p.26
"복수하는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는 실제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갈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p.27
"성경의 책들은 사람들에 의해 쓰였습니다. 성경 저자들은 문학적으로 수준 높은 능력을 소유했지만 한계를 가졌고, 상처와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에 의해 기록된 하느님 말씀, 때로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보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성령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회복시키고 치유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p.30
"분명한 것은, 본문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각자 성경의 본문을 개인적인 상황에서 다시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열려 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p.31
"초기 수도자들은 성경 말씀을 치료를 위해서도 활용했습니다. 초기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의 모든 어둠과 혼란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말씀을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에 간직하였습니다."

p.71
"하느님을 신뢰하면, 우리의 자유롭지 못한 생활 방식은 그 가치를 잃어, 더 이상 우리를 옭아매지 못합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오는 고난을 극복하고 자유의 길을 갈 수 있게 됩니다."

p.79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가졌다 해도 고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예견할 수 없고, 고통에 심리적인 원인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느님의 뜻에 따른 삶과 그럼에도 경험하게 되는 고통 사이의 긴장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p.79
"욥기는 하느님과 사탄 사이의 내기가 마치 고통의 원인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지 고통이 신비라는 사실을 알려줄 뿐입니다. 고통은 신비이지만, 사람이 하느님을 신뢰한다면 고통이 그 사람을 파멸시킬 수는 없습니다. 욥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고통은 오히려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굳은 믿음으로 이끌어줍니다."

p.90
"우리는 악한 생각들에 내면의 자리를 너무 많이 내어주지 않아야 하고 참된 바위이신 그리스도께 그것들을 내던져 부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을 희망 안에서 예수님께 맡겨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생각들은 예수님에게서 해결되고 그 힘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이것이 항상 평화로울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 안의 일부 악한 생각들을 그리스도를 향해 내던져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더 이상 그 생각들이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p.93
"시편은 우리가 자신의 실재를 직면하고, 우리가 발 담그고 있는 구체적 현실의 모든 분쟁을 하느님께 맡기라고 초대합니다. 이렇게 할 때만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p.94
"영성의 길을 걷는 모든 이는, 예수님처럼 자기 잘못 없이 악인들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을 경험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 때문에 삶이 힘겨워지는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예수님도, 경건한 모든 사람처럼 삶의 길에 놓인 많은 돌부리를 체험하시고 때때로 출구가 없어 보이는 상황에 빠지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난관에서도 하느님께 굳은 신뢰를 둡니다. 우리가 난관에 부딪히고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하느님이 때때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분은 가난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돌보신다는 것을 예수님은 믿습니다."

p.100
"우리는 온갖 두려움과 버림받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역시 죽더라도 선하신 하느님의 손에서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p.106
"초기 수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내면에서 생기는 감정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화나 분노나 질투와 같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감정에 너무 많은 자리를 내어주면 안 됩니다.”"

p.108
"살아가는 동안 나의 내적 원수들, 나의 두려움, 나의 분노, 나의 질투와 화해해야 합니다. 이 원수들이 영혼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면 원한과 불만이라는 감옥에 나를 가두어버립니다."

p.108
"평화를 만드는 것은, 나의 모든 내적 원수들, 나의 두려움, 질투, 우울함에 말을 걸고, 이런 감정들이 내게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에 말을 건다면, 오히려 그 감정들이 나를 내적 평화로 이끌어주고 다른 이들과도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p.124
"“유혹에도 좋은 점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심지어 우리 자신도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에 얼마나 좋은 것을 주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유혹은 그것을 환히 드러내서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 자신을 알게 하고 결국 우리의 비참함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리고 유혹이 우리에게 알게 해준 모든 좋은 것에 감사하게 합니다.”(오리게네스)"

p.125
"우리는 유혹과 시험을 구분합니다. 우리는 시험에 맞서 싸워야 하고, 그럼으로써 시험을 이겨내고 더 강해집니다. 하지만 유혹은 가능하면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혹은 마치 소용돌이처럼 우리를 아래로 잡아당기고 집어삼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p.134 ~ p.135
"예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어가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말씀은 절대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기게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통해 변화될 때까지,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하며 다가올 것입니다."

p.137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일상이 전혀 다르게 흘러가거나 계획이 늘 무너지더라도 화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나의 계획을 망치는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고 그분의 업적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p.138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게 되면 갈등과 불협화음이 생겨납니다. 자기 자신과 상반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항상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환상과 작별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작별은 고통을 줍니다. 우리는 이 환상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p.138
"융은 자기실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십자가의 곁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항상 자기 안의 대립되는 요소들을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성실한 신앙인이길 원하지만, 동시에 세속적이고 때로는 하느님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는 친절하길 원하지만, 우리 안에는 공격성 또한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 안의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 자신과 함께 내적인 평화를 발견한다는 의미입니다."

p.139
"자신이 자아에 지배당하도록 두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그의 자아로 가득 차서 인정받기를 원하는지 아닌지, 혹은 그가 더 큰 무엇인가를 위해 열려 있는지 아닌지를 느낍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만을 생각해서 생명을 얻으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자기 자신과 자아에 둘러싸인 사람은 결국 외톨이로 남고 다른 이들에게서 떨어져 나갑니다. 자아를 내려놓고 더 큰 것 곧 예수님의 영을 위해 열려 있는 사람은 선한 빛을 내뿜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과 함께 기꺼이 관계를 유지합니다."

p.140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매달리는 사람은 완고해집니다. 항상 얻길 원하는 사람은 잃게 됩니다. 생명에 동참하고자 준비된 사람만이 - 비록 상처받거나 실패자처럼 보일 위험이 있더라도 - 생명을 얻고 삶에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p.140
"우리는 삶에 대해 잘못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자신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 방법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람과 함께 머물고, 함께 노동하면서 자기 자신을 잊을 때, 우리는 사람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p.149
"모든 사람은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이들과 자유롭게 만나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홀로 서지 못하면,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p.151
"부는 우리 인격의 가련함을 감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가면을 강화합니다. 부를 가면처럼 이용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조용한 내면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바고 그곳이, 그 사람 내면에 있는 하느님 나라이고, 거기에서 하느님은 다스리십니다."

p.163
"만일 말씀이 나를 화나게 한다면, 그것은 희생자로 남아 있지 말고 오래된 상처를 바라보고 치유하라는 초대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은 위치에 계시지 않으며,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의 존엄성과 관련된다는 경험을 표현합니다. 이 말씀은 나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내 안에 오시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p.192
"두려워하는 사람은 단지 자신의 주위만 맴돌 뿐,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데 자유롭지 못합니다."

p.193
"우리 안에는 자신을 동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열등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어렵다. 나는 받은 것이 너무 적어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예수님은 이런 생각의 결과를 과감하게 묘사하면서 우리를 이런 태도에서 해방시키고자 합니다."

p.204
"신앙인들에게 규정은 정말 제일 중요한 것일까요? 의미 있게 살아가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육화의 길을 가고,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내게 주어진 모든 일 안에 이미 품삯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아닐까요? 품삯은 마지막 날에 받아야 하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의미 있는 삶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마태 20,1-16) 마치 우리가 스스로 하느님의 품삯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게 해주십니다."

p.209 ~ p.210
"죄와 관련해서는,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거나 무시할 위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참회하는 모습을 취하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죄나 죄책감에 대해 다르게 말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존감을 잃지 않으면서 죄를 다루는 방법을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p.210
"죄는 자기를 정당화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사람들 안에 함께 살라는 초대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집에 갈 수 있고 다른 이들 역시 우리 집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른 이들의 죄를 고발하거나, 자신의 죄를 변명하거나, 자책하며 한탄하거나, 주눅 들지 말고, 죄를 서로 나누라고 초대합니다. 어느 누구도 속죄 제물로 만들지 않고 모두 존엄성에 맞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p.237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의 회심에서, 자신이 조건 없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임을 처음으로 체험합니다. 그래서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자신을 하느님 앞에 증명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p.242
"바오로는 사도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가까이에 있음을 경험합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의 영이 강하고 안정적이며 영적으로만 드러나지 않고, 자주 약하고 쓸모없는 모습으로도 드러난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바오로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고스란히 경험합니다."

p.258
"십자가는 다른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를 해방시킵니다. 이 자유는 모든 기대를 꼭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p.273
"성경 말씀이 나를 화나게 하고 불편하게 하고 자극할 때, 그 말씀과 씨름해서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성경 말씀이 너무 지나치다고 거부하지 마십시오. 화내는 그 이유와 대화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억눌린 욕망과 욕구 또는 오래된 상처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말씀이 주는 의미에 깊이 스며들게 하는 자극입니다."

p.274
"하느님 말씀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발견할 때까지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하느님의 마음은 보통 거칠고 단단한 껍질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자비의 마음이고 온유와 사랑의 마음이며, 관대함과 자유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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