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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5번 레인 본문
은소홀 지음. 노인경 그림. 문학동네.
‘적당히’를 알아가는 여성 아동의 성장 이야기.
‘적당하다’는 말은 ‘정도에 알맞다’라는 뜻이다. 길게 보면 인생의 많은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지만, 그 수많은 일들이 순서대로 오진 않았다. 내게 <5번 레인>은 한꺼 번에 닥쳐오는 수많은 일들과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마음 속 감정들 속에서 ‘적당히’를 배우는 이야기였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도 ‘적당하게’ 하는 일이고 그만 마음을 접고 멈출 줄 아는 것도 ‘적당하게’ 하는 일이란 걸 나는 언제쯤 알기 시작했을까.
‘적당히’가 덤비지도 않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 ‘중간’이 아니란 걸, 솔직하게 덤벼도 보고 솔직하게 피해도 본 후 온 몸으로 배워낸 나루가 너무 멋있었다.
p.97
"나루는 그런 태양이를 보면서 과학자도 수영선수도 하고 싶다는 게 그냥 잘난 척만은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마음에 두 가지를 담고 있다고 해서 꼭 하나의 크기가 100중의 50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태양이는 마음의 크기가 남들보다 큰 아이일지도 모른다."
p.178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과하게 채우면 작은 돌멩이에도 통통 튀어 쓸데없이 핸들을 꽉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바람을 부족하게 채우면 바퀴가 땅바닥을 제대로 밀어 주지 못해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럴 때에는 작은 언덕조차 힘이 든다. 무엇이든지 ‘적당히’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적당히라는 것이 언제나 제일 어렵다. 얼마큼의 바람이 적당한 것인지 알려면 자기 손으로 직접 바람을 넣고 달려 보기를 여러 번 해 보는 수밖애 없다. 감각은 대체로 그렇게 몸에 익는다."
p.184
"“나루야, 넌 나랑 달라. 너는 거기서 멋있게 뛰어. 방향이 아래를 향하더라도 너 스스로 뛴다면 그건 나는 거야.”"
p.209
"태양이는 기록이 아니더라도 이미 여러 번 보여 주었다. 한 번도 연습을 늦거나 빼먹지 않았고, 늘 훈련량을 성실히 채웠다. 기록이 줄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않았고,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물론, 나루도 마찬가지다. 나루는 태양이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그렇게 지내 왔다. 그렇게 때문에 물 앞에서 누구보다 당당했고 자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루는 태양이처럼 활짝 웃을 수가 없었다. 다시 부끄럽지 않게 물 앞에 서기 위해서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했다."
p.21
"이렇게 된 이상 나루는 결승을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루는 알고 있었다. 결승 스타트대에 오르는 순간, 적당히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정면으로 부딪혀야 한다. 그것이 예산에서 떨어진 선수들에 대한 예의이고, 단단히 마음먹고 덤비는 초희에 대한 예의이고, 8년 내내 수영만 보고 달려온 나루 자신에 대한 예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