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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본문

雜食性 人間

공정하다는 착각

하나 뿐인 마음 2021. 6. 11. 14:45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덧붙일 말은 없고, 생각나는 단어 하나. 반대급부(反對給付).


p.15
"정치를 잘하기 위해 기술 관료적 전문가들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시민적 덕성이 요구된다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모든 면에서 시민들과 일체감을 갖는 능력 말이다."

p.42
"외국인 혐오증과 극단적 민족주의. 이런 추한 감정과 얽혀 있는 정당한 불만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이는 그러한 불만이 단순히 경제적인 불만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문화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불만은 단지 임금과 일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존중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p.44
"최근 수십 년 동안 노동자의 사회적, 문화적 지위가 꾸준히 낮아진 것은 피할 수 없는 조류 탓이 아니었다. 주류 정당들과 집권 엘리트가 정책을 그렇게 폈기 때문이었다."

p.52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 이러한 도덕 감정은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스트적 반항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민자들이나 아웃소싱에 대한 반항 차원을 넘어, 포퓰리즘의 불만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향한다. 그리고 그 불만은 정당화 된다."

p.52
"‘공정한 능력주의 제도를 마련하자’, ‘사회적 위치가 재능과 노력을 반영하게 하지’며 되풀이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성공(또는 패배)을 해석하는 방식에 잘못된 영향을 준다. 재능과 노력을 보상하는 체제라고 생각하는 건, 승자들이 오직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여기게끔 한다. 그리고 그보다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깔보도록 한다."

p.53
"우리가 가진 몫이 운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보다 겸손해지게 된다. 그러나 완벽한 능력주의는 그런 감사의 마음을 제거한다. 또한 우리를 공동 운명체로 받아들이는 능력도 경감시킨다. 우리의 재능과 행운이 우연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할 때 생기는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그리하여 능력은 일종의 폭정 혹은 부정의한 통치를 조장하게 된다."

p.57
"대통령 정책고문으로서 경제학자들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공동선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일에 시장 메커니즘이 점점 더 많이 적용되고 있다. 정치 논쟁에서 중요한 도덕적, 시민적 문제들 즉 ‘불평등 증가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국경 문제에서 살펴야 할 도덕적 부분은 무엇인가?’, ‘일의 존엄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우리는 시민으로서 서로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나?’ 등이 소외되고 있다. 능력과 공공선을 이처럼 도덕과 무관하게 보는 관점은 몇 가지 점에서 민주사회를 약화시킨다.

p.67
"능력주의 이상의 어두운 면은 가장 매혹적인 약속, 즉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말 안에 숨어 있다. 이 약속은 견디기 힘든 부담을 준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다. 개인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어느 정도까지는 말이다. 그것은 도덕적 행위자이자 시민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각자가 삶에서 주어진 결과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p.69 ~ p.70
"마침내 신이 욥에게 말씀하실 때 그는 욥과 그 친구들이 가졌던 능력주의 가설을 부정함으로써, 희생자를 단죄하는 잔인한 논리를 부정한다. 발생하는 모든 일이 사람의 행동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천명한다. 모든 빗방울이 선한 자의 곡식을 축복하려 내리는 것도 아니고, 모든 가뭄이 사악한 자를 징계하려 드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에도 비는 내린다. 신의 창조 또한 오직 인간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주는 인간중심적 시각으로 들여다 보기에는 너무 크며, 신의 뜻 역시 인간의 이해력을 벗어나 있다."

p.84 ~ p.85
"번영 복음의 매력 중 하나는 그것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는 데 있다. 이는 성급하면서도 개인에게 힘을 심어주는 관념이다. 신학적으로 이는 구원이 일종의 성취히며 우리 힘으로 얻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세속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에게 충분한 노력과 믿음만 있다면 부와 건강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매우 능력주의적인 이야기다. 모든 능력주의 윤리처럼, 개인의 책임을 극찬하는 그 개념은 일이 잘되어갈 때는 기꺼워할 만하다. 하지만 반대로 일이 잘못될 때는? 사기를 꺾고 심지어 자책에 시달리게 만든다."

p.88
"선한 것과 위대한 것이 꼭 연결되지는 않는다. 사람이든 나라든 정의로움은 정의로움이고, 부와 권력은 부와 권력이다. 역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강대국이 꼭 정의롭지는 않으며, 도덕적으로 존경할 만한 나라들이 꼭 강력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p.133
"개인 책임을 우선시하는 미국인의 강력한 성향과 불평등을 용인하려는 태도가 ‘열심히 일하면 사회적 상승이 쉽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개인의 노력이 갖는 힘에 대한 유럽인들의 의심은 불평등을 참아내기 힘들게 했으며, 그와 함께 사회적 상승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도록 했다."

p.151
"능력주의자들은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일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부지불식간에 학력주의를 조장한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에게 고약한 편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p.151
"학력주의 편견은 능력주의적 오만의 한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능력주의에 더욱 물들게 되면서, 엘리트들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는 버릇마저 들었다. 대학에 가서 자신의 조건을 향상시키라고 노동자들에게 골백번 되풀이하는 말은 아무리 의도가 좋을지라도 결국 학력주의를 조장하고 학력 떨어지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과 명망을 훼손한다."

p.157
"자신의 정책이 우둔하지 않고 스마트하다며 변명하는 일은 자신의 학력이 출중하다며 변명하는 일과 매우 닮았다. "

p.160 ~ p.161
"대졸 엘리트들이 편견에 거리낌 없는 까닭은 개인 책임을 중시하는 능력주의와 관련이 있다. 엘리트는 가난이나 출신 계층을 따지기보다 학력을 따져 노동계급을 멸시한다. 학력 이외의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들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낮은 학력은 개인의 노력 부족을 나타낸다고 본다. 그래서 대학에 못 간 것은 그 개인의 책임이라 여긴다."

p.160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는 보다 못한 교육 수준의 대중에 비해 편견이 결코 적지 않다. 다만 편견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더욱이 엘리트는 그런 편견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는 반대할지 모르나, 저학력자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는 ‘그러면 어때?’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p.161
"저학력자에 대한 이런 안 좋은 감정은 엘리트만의 것이 아니다. 저학력자들 스스로도 그렇다. 이는 능력주의적 성공관이 얼마나 사회에 깊이 파고들어 있으며,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그 때문에 얼마나 사기 저하를 겪고 잇는지 보여준다."

p.198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단지 부자의 자식과 빈자의 자식이 장기적으로, 능력에 근거하여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볼 뿐이다.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모두 그들의 노력과 재능의 소관이다. 그 누구도 편견이나 특권에 따라 억지로 아래로 떨어지거나 위로 올려질 수 없어야 한다. 능력주의에서 중요한 건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다리의 단과 단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p.217
"“고소득은 능력의 증표이며 저소득은 무능력의 증표라 여기는 사회에서 개인의 지위와 보수가 능력에 비례한다고 모두 믿게 된다면 어떨까. 솔직히 더 이상 능력과 성공 사이의 관련성을 주장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짊어질 부담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하이에크)

p.247
"능력주의의 폭정을 극복한다는 게, 능력이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배분에 아무 역할도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신 그것은 성공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꾸고,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잘나서 그런 것’이라는 능력주의적 오만에 의문을 제기함을 뜻한다. 그리고 능력이라는 말로 옹호되어 온, 그러나 분노를 퍼뜨리고 정치에 해를 끼치며 사회를 갈라놓는 부와 명망의 불평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포함된다."

p.282
"능력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승리자다. 그러나 상처 입은 승리자다. 그들은 오랫동안 불타는 고리를 뛰어 통과하는 일을 거듭해왔고, 그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분투하고 있다. 생각하고, 탐구하고,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해야 가치 있게 살아갈 것인가 숙고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내지 못하고, 싸우고 또 싸운다. 놀랄 만큼 많은 아이들이 정신 건강에 이상을 겪고 있다. "

p.287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소득과 사회적 명망의 불평등의 책임이 고등교육 하나에만 있다고 보면 잘못이다. 시장 중심적 세계화 프로젝트, 현대 정치의 기술관료화, 민주 제도들의 과두제화 등에 모두 이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이 있다."

p.309
"세계화가 일으킨 불평등이 왜 그토록 강력한 분노로 이어졌는지 설명된다. 세계화에 뒤처진 사람들은 다른 이들은 번영하는 동안 경제적 곤경에 처했을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종사하는 일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함을 깨달았다. 사회의 눈에, 그리고 아마 스스로의 눈으로도 그들의 일은 더 이상 공동선에 대한 가치 있는 기여라고 비쳐지지 않는다."

p.310
"미국 노동계급의 마음의 상처로 빚어진 현상은 구직 포기뿐만이 아니다. 다수가 삶 그 자체를 포기한다. 최악의 비극적 지표는 ‘절망 끝의 죽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p.318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안 그랬더라면 외면했을(또는 아예 인식도 못했을) 도덕 및 정치적 문제(오늘날 불만의 배경)’와 스스로 맞닥뜨리게 한다. 무엇이 공동선에 대한 의미 있는 기여인가, 그리고 우리는 시민으로서 서로에게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가?"

p.343
"시장주도적 세계화와 능력주의적 성공관은 힘을 합쳐서 도덕적 유대관계를 뜯어내 버렸다. 그들이 뿌려 놓은 글로벌 보급 체인, 자본의 흐름, 코스모폴리탄적인 정체성은 우리가 동료 시민들에게 덜 의존적이 되고, 서로의 일에 덜 감사하게 되고, 연대하자는 주장에 덜 호응하게 되도록 했다. 능력주의적 인재 선별은 우리 성공은 오로지 우리가 이룬 것이라고 가르쳤고,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유대관계의 상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로 속에 있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p.348
"장벽을 허무는 일은 좋다. 누구도 가난이나 편견 때문에 출세할 기회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좋은 사회는 ‘탈출할 수 있다’는 약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p.348
"기회의 평등은 부정의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도덕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정적 원칙이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적절한 이상은 아니다."

p.348 ~ p.349
"사회적 상승에만 집중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식의 강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보다 사회적 상승에 보다 성공적인 나라라도 상승에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를 공동체 구성원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능력주의적 학력이 없는 사람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소속이 어디인지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p.349
"“사회적 복지는 응집과 연대에 달려 있다. 그것은 단지 사회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일반 문화, 그리고 강력한 공동 이해관계 의식의 존재를 내포한다. 개인의 행복은 각자가 자유롭게 새로운 안락과 명성의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존엄과 문화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함도 요구한다. 후자는 반드시 출세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 (R.H. Tawney)"

p.352 ~ p.353
"공동선이 오직 우리 동료 시민들이 우리 정치공동체에는 어떤 목적과 수단이 필요한지 숙려하는 데서 비롯된다면, 민주주의는 공동의 삶의 성격에 무관심해질 수 없다. 그것은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서 온 시민들이 서로 공동의 공간과 공공장소에서 만날 것을 요구한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간느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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