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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묵상 본문

雜食性 人間

이 사람은 누구인가 -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묵상

하나 뿐인 마음 2021. 4. 11. 09:55

라인홀트 슈테혀 지음. 장익 옮김. 분도출판사.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성삼일을 생생하게 따라가며 묵상한 라인홀트 주교님의 묵상집. 본당 수녀로 살다보니 사순절이 제일 빠듯하고 성삼일이 제일 고단하다. 제법 요령도 늘어서 미리 할 수 있는 일들은 사순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준비해 두었지만 그래도 성주간에 내 기도를 붙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올해는 일찌감치 이 책을 빌려놓고 성삼일에 시작했다. 어떻게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따라가고 싶었었다. 본당 수녀가 아닌 소임을 받게 되면 언젠가 다시 한 번 이 책으로 성삼일을 보내고 싶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덕분에 올해 성삼일은 어느 정도 소음이 잦아들고 거품이 가라앉는 시간이었다.

 

주님, 언젠가는 제 삶으로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오롯하게 따르게 하소서.

 


"그런데도 그들은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도 다 이 저녁의 비극에 속한다. 숭고함과 가소로움이 뼈저리도록 한데 얽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얼마나 자주 벌어질 것인가. 교회 역사에서도 성사적 신비와 승진의 야심, 심오한 복음 말씀과 치졸한 권력 추구, 하느님 나라의 역사와 노골적 명예욕, 영원한 진리의 수호와 비속한 자기 과시 행태 등. 여기서 문제 되고 있는 것은 만찬에서의 째째한 자리다툼이 아니다. 예수는 당신의 사업과 당신의 교회는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궁색함의 병존이라는 짐에 짓눌리고 그 위험에 놓인 것을 알고 있다."

p.27
"섬김의 직무는 언제나 허영과 권력 의식에 맞서, 마음을 기울이고 참고 뜻을 밝히고 돕고 공감하고 권유하면서도 나 자신은 잊을 줄 아는 건전한 길이다."

p.32
"때로는 할 말을 잃게 하는 형태의 인간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것이 가차 없이 죽음으로 몰아붙이는 자연 재난의 파급일 수도 있고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인간의 잔악이나 무책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어이없는 묵언 중에 이런 우울한 의문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 이런 일을 허락하는 신이라면 무슨 신인가."

p.39
"여기에는 더 큰 무엇이 달려 있다. 모든 어두움을 무릅쓰는 ‘그럼에도 사랑’의 가장 감격적인 실증이 그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두려움을 무릅쓰고 ‘네’하는 사랑을, 인간들에 대한 숱한 실망을 무릅쓰고 믿는 사랑을, 악의에도 불구하고 보복을 모르는 사랑을, 고립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위해 거기 있는 사랑을 당신 아들에서 실증하신다. 이미 우리네의 일상에서도 ‘그럼에도 사랑’이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

p.57
"암흑의 시간에서 영원히 그칠 줄 모르는 이 메아리가 우리에게 울려 와야 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p.73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부활의 불빛이 오늘날 보게 된 심미적인 전례 체험 너머, 촛불과 찬란한 조명 너머,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풀리지 않은 죄책의 어두운 구석까지, 그늘져 가는 마음들까지 비추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 불빛이 과연 생명 존중과 인간성의 증진으로 이어지는지, 희망을 불꽃을 일으키는지, 부활 불빛의 반사가 사회의 길거리에까지 비치는지, 구원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기쁨이 솟게 하는지 묻게 된다. 이것이 문제이다."

p.77
"세상을 바꾸어 놓는 그리스도의 광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하나의 크나큰 은총이다. 이 믿음은 과거에도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렵고 혼란스러운 세상 한가운데서 오늘도 그대로 부활의 알렐루야를 마음을 다하여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

p.78
"부활 불꽃이 널리 비치기 위해서는, 전례와 경건한 아름다움을 넘어, 하느님의 예측할 수 없는 은총 외에도 또 다른 무엇이 결정적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암흑을 이기는 위대한 승리를 엿보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이다. 부활의 빛발을 성당에 앉아 있는 이웃 너머로 전할 줄 아는 신자들이 있음이다. 우리 시대에도 확실히 많은 이들이 다른 누구로부터 적은 빛이라도 기다리고 있다."

p.97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라고 건성으로 되풀이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하느님의 집은 신앙심으로 차고 넘쳐야 한다."

p.99
"교회 안에서마저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결국 시혜적 자선으로 축소해 버리려는 기도가 있으며, 거금을 모아 부유한 나라 은행에 은닉하는 기득권층과 곧잘 어울리는 부류도 있다. 그렇게 된 이상 산꼭대기에 거대한 그리스도상을 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구약의 예언직 전통을 이어 나간다면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힘쓰는 일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p.100
"예수는 기득권층에 대한 항거의 값을 목숨으로 치렀다. 온 세상이 공익과는 전혀 무관한 투기 자본주의의 위협을 받고 있는 오늘, 교회는 스스로 설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이 무자비하고 반사회적인 부자들이 한심하게도 ‘하느님’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서 도박장이 되어 버린 이 세상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무관심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p.108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께 눈길을 돌리고 또 돌리고,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의 분별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사랑이 첫째여야 함을 신중히 생각하고 마음 깊이 새기며 구원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오로지 은총을 통해서만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하겠다."

p.108
"교회 안에는 이를테면 외롭게 영성의 히말라야 정상에 올라앉은 그룹들이 가끔씩 있다. 그중에는 자기들만이 구원을 전세 냈는지 장백의를 입은 채 샤워라도 할 듯이 열심한 이들과도 부딪힌 적이 있다. 이런 경우 할 말은 한마디밖에 없다. 하느님 나라에서 자기네가 엘리트라고 느낀다면 그들은 더 이상 엘리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학력과 지혜는 매우 부서지기 쉬운 그릇에 담겨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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