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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숲에서 숲으로 본문

雜食性 人間

숲에서 숲으로

하나 뿐인 마음 2020. 12. 28. 21:17

 

 

김담. 아마존의 나비.

 

책을 소개해주신 분이 '여성작가의 맑고 묵직한 숲 에세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맑고 묵직한 산문이었다. 작가의 고향인 강원도 고성에서 살며 만난, 인간 삶의 일부인 자연을 들려준다. 작가는 경관 소개에 그치지 않고 그날 그곳의 자연 그대로를 보여주고 들려주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지 않는다.

 

미국 사는 몇년 동안 기회가 닿는대로 서점이나 미술관, 박물관을 갔었는데 지금은 어딘지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미술관, 아시아 전시회에서 벽을 가득 채운 중국 병풍을 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전시관 한쪽 벽을 꽉 채운, 그 병풍이 생각났다. 빼곡하게 정성껏 수놓아진 거대한 열두 폭 병풍. 더불어 병풍도 구부려야 한다는 속담처럼, 바른 길이라 해서 마냥 주장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 책의 교훈 중 하나였다. 부끄럽지만 태양광 발전소는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 100퍼센트 순기능인 줄로만 알았던 내가,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은 것도 이 책 덕분이다. 

 

자세히 살펴보되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관계를 맺되 소유하지 않는 것, 작가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였다. 자신이 나고 오랫동안 살아가는 곳이고 직접 심고 보듬었기에 몇할이라도 지분을 가졌다고 여길 만도 한데 작가는 쉬이 판단하거나 소유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하지 않는 것, 아무리 호의라 해도 내 생각대로 바꾸지 않는 자세는 인간 삶에 있어 얼마나 장엄한 경관인가. 


"가고 오는 일이 아무리 덧없다고 여겨도 딱따구리는 나무 둥치를 쪼았으며 까마귀는 또 까마귀대로 제 울음을 울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듯 영영 그리움의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노상 한쪽만 보고 있는 것인지도."

"볕바른 오뉴월이나 되어야 먹을 수 있는 딸기를 한겨울 눈더미 속에 앉아 냠냠거리게 된 인간들처럼 자연도 어느 순간 어긋나고 삐걱댔다. 봄이라 할 만한 시절은 이제 인간들 기억 속에서만 오롯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는 유명하고 흔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수 년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 춘천 출신의 소설가 김유정이 쓴 소설 <동백꽃>이 생강나무 꽃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예전에는 목초지 조성을 이유로 소나무들을 파내더니 근래에는 태양광 발전소를 이유로 소나무들을 팔아치우고 있었다. 숲정이 곳곳마다 마치 헌데처럼 드문드문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고 있었다."

"버섯 가격이 치솟고 가을철 든든한 가욋벌이가 되면서부터 산은, 숲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한쪽에서는 금줄과 현수막을 내걸었고 또 한쪽에서는 그 현수막과 금줄을 칼로 찢고 잘랐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성마르고 욕심 사나운 인간들이 된 것일까."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어느 한 시절 함께 공기와 햇볕, 바람과 비를 나눈 사이라면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가고 없는 것이 그리운 것처럼."

"새는 새여서 즐거울까. ‘죽어 죽어 파랑새 되’겠다는 시인 한하운을 떠올렸다. 일생을 나병을 껴안고 살아야 했던, ‘가도 가도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라고 읊었던. 그 아찔한 막막함 끝에 그는 파랑새가 되었을까."

"인간의 시간을 켜켜이 쌓아올려도 자연의 시간에 댈 수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시간이 하찮은 것은 또 아닐 것이었다. 자연의 시간 속에 인간의 시간이 스며들었고 인간의 시간 속에는 또 자연의 시간이 섞여들어 서로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일 것이었다."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고 치면 정치는 또 사람의 일일 텐데, 숲이 사라진 세상은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일까."

"한치 앞이 어둠이라는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그만두고 내일조차 염두에 없는, 하루만 살고 말 것처럼 서둘러서 가진 것을 탕진하고 있다. 나만, 내 가족만, 우리 식구만 괜찮다고 해서 세상이 망가져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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