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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때린다는 말 본문

雜食性 人間

사랑해서 때린다는 말

하나 뿐인 마음 2019. 1. 8. 22:00


‘체벌’이라 쓰고 ‘폭력’으로 읽다
세이브더칠드런 기획. 김지은. 김한종. 송란희. 표창원. 구형찬 지음. 오월의봄.

자꾸 되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읽은 책. 나도 그동안 '아이들이란 보살피고 도와줘야 하는 등등의 존재'로만 생각하고 개별적인 하나의 존재라는 것은 자주 잊고 있었다. 지난 시간 동안의 나 자신을 생각하면 기억할 수 있는 시기부터 떠올려 본다해도 매순간, 나는 온전히 나였다. 당장은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지만 그것이 당연한 나이였고 그게 온전한 나였다. 연습을 거듭하고 조금씩 자전거를 매끈하게, 안전하게 탈 줄 알게 되는 그 과정의 내 모습도 모두 온전한 나였다. 어쩌다 그걸 부정당할 때마다 상대의 의도와 무관하게 기분 좋았던 적이 없었는데도 어찌 이리 쉽게 잊고 사는지. 유년 시절의 나도, 이십대 삼십대를 살면서 비록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겪었던 나도,  오십대를 향해 가는 지금의 나도 온전한 나이고 그건 타인에게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하는 말이다. 


좁은 의미의 '폭력'이라면 나와 그래도 거리가 좀 먼 이야기리라 생각했지만 어엿한 한 사람을 '아직은 부족한 존재'로 생각하며 행했던 수많은 나의 생각과 말을 되돌아 보게 하고 더불어 내 안의 나도 모르는 폭력성, 물리적 힘을 사용하지 않는 폭력, 부드러운 폭력, 영향력이라는 폭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책. 


또 하나,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여러 강사의 강의 모음집이라 모든 강의가 다 내 마음을 두드린 건 아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가정 환성 언급하며 사람을 판단하고 가두는 것이야 말로 폭력 그 자체가 아닌가 싶어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가정에서 쉽게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비행청소년으로 자라기 쉽다는 말은 정말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더 강하게 하도록 해 준 책. 누군가를 겨냥하고 꺼낸 말이 아니라 해도 그건 너무 쉽게 낙인이 되어 그 사람을 낚아챈다.


"가해자의 상태에 왜 공감해야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있어요. 우리는 언제든지 상대적 강자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강자가 약자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상황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지 생각해보고 그 마음이 왜 부당한지 스스로 반성해본다는 의미에서 공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폭력성은 폭력을 행사하는 자가 아니라 폭력의 대상이 되는 피해자에 의해 결정된다."

"타인을 체벌하는 일이 어떤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지를 숙고해본다면 무엇으로 때리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이런 식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이런 구분보다 먼저 이들은 모두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을 사회적 존재로 볼 때 중요한 것은 어른이 바라보는 어린이가 아니라 지금껏 어린이가 해온 역할입니다. 어린이가 해온 사회적 역할은 그 자체로 사람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똑같이 아이들인데, 우리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체벌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어른들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아이들을 독립적 존재 혹은 수동적 존재로 보는 태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결국 체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옳고 그르다는 기준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따라 판단한다는 데 있습니다. 생각을 하는 방식, 나아가 그 생각을 토대로 행동하는 기준 같은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서 결과만을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입니다. 미리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칭찬을 하거나 벌을 주는 방식입니다."

"강자와 약자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관계에서 형성되죠. ‘여성’과 ‘아동’이 항상 약자로 묶이는 건, 어떤 상대가 이들을 계속 약자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에요. 약자임을 판단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딘가에 있어서 주류가 아닌 주변부의 사람들에게 ‘약자’라든가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죠. 핵심은 이런 이름 붙이기가 결국 이들을 ‘타자화’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약자들을 ‘보호’해야 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 구도가 성립됩니다. ‘여성’과 ‘아동’을 묶는 게 불편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결국 관계에서의 불평등을 알아채는 능력이 절실합니다. 한국사회에는 사실상 이런 걸 일깨워줄 수 있는 교육 자체가 없습니다."

"TV와 같은 매체에서도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거나 술병을 던지는 모습이 묘사되죠. 하지만 실제로 70퍼센트 이상의 가정폭력은 가해자가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납니다. 나머지 30퍼센트인 술을 마신 상태에서 폭력이 발생한 경우에 대해서는 이런 해석을 합니다. 한국 사회가 음주에 관대하잖아요? 술을 마셔서 그랬다는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폭력 행위를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술 핑계를 댄다는 거죠."

"상담 현장에서는 때리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도 합니다. 술에 취했기 때문에 때리는 것이 아니고요. 이건 무척 일리 있는 말입니다."

"폭력은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것과 무관하게 자신이 선택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자 하면, 평생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해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없습니다. 타당한 이유 없이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보는 게 오히려 정확할 거예요. 이 말은, 그렇게 폭력을 쓸 수 있는 사회적인 조건이 된다는 거예요. 그걸 용인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폭력의 이유를 자꾸 개인의 문제로 돌리거나 음주나 가족력 등을 내세워 변명하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어요."

"결국 ‘가해자는 왜 폭력을 휘두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짜 답은 이렇습니다. “때릴 수 있으니까 때리는 것뿐”(<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정희진 글)입니다. 끝, 이게 끝이에요. 때릴 수 없으면 못 때려요."

"폭력의 경험을 되새겨볼 때 그게 분노나 공포를 유발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든요. 그 순간에 내가 뜻대로 하지 못한 거예요. 나의 동의 없이 누군가 나를 통제했던 순간이었던 거죠. 그래서 피해를 회복한다는 것은 내 몸에 대한, 혹은 내 마음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우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허락하는 거죠. ‘울어도 돼. 울 때가 됐지. 1년에 한 번 정도는 좀 울어야 하지 않겠어?’ 이렇게 자기 컨트롤을 할 수 있게 되면 사실은 그게 해결의 종착지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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