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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손 내미는 사랑 본문

雜食性 人間

손 내미는 사랑

하나 뿐인 마음 2018. 6. 29. 08:31


이제민 지음. 생활성서.

본질을 살고자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자.

p.20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정의보다 옳은 사람, 그른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품어주는 자비입니다."

p.22 "우리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인격으로 복음을 선포합니다. 자기가 선포하는 말을 소화했을 때 그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온몸으로 느낍니다. 다른 이의 말을 자기가 체험한 것처럼 말할 때, 그의 말에는 힘이 없을 뿐더러 그는 자칫 이중인격의 소유자가 됩니다. 우리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 누구보다 그 원천에서 묵상하며 사람들을 그 원천으로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p.24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K. 라너-"

p.26 "성찰 없이 입으로만 고백하는 개념의 틀을 과감히 깨고 나올 때 우리는 언어의 고향에 이르게 되고 예수님이 믿는 하느님, 예수님이 보여 주신 그리스도를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하느님은 바로 그분의 하느님이고, 우리가 선포해야 할 천국은 바로 그분이 선포하신 천국이어야 하며, 우리가 부활을 선포하는 이유도 그분처럼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언어를 익혀야 합니다."

p.28 "유신론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올바로 부르기 위해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지탱해 주는 발에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방인의 땅이라고 저주한 곳에서도 우리는 신을 벗어야 합니다. 그곳도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거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p.29 "자기의 무지를 고백하는 자만이 그분이 창조주이심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신비 속으로 들게 될 것입니다."

p.40 "교회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이라는 단어를 예사롭게 입에 담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복음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예수님의 복음이 아닐 때가 많으며 그의 말이 복음적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p.42 "우리가 종교를 찾고, 하느님이 전능하신 천지의 창조주이시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인생을 기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몸에 십자가를 긋고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그리스도의 몸)를 모시는 이유는 인생을 기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을 의미 있고 기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 종교를 찾고 하느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p.44 "예수님은 밀어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이미 기쁨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셨습니다. 서로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 마음에도 이미 하느님께서 심어 주신 기쁨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모든 이 안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져 있는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해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고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할 뿐입니다."

p.44 "보기 싫은 사람을 보지 않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마음으로는 결코 인생을 기쁘게(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 수 없습니다. 기쁨은 ‘밀어내는 마음’이 아니라 ‘다가가는 마음’으로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p.45 "예수님은 ... 성인, 죄인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다가가셔서 그들 자신보다 더 깊이 그들 마음 안에 들어가셨고, 그렇게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셨고, 또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에게 “손안에 있다(엥기켄)”는 말은 인생을 기쁘게 사는 비법을 풀어주는 핵심적인 말이 되었습니다."

p.46 "인생을 기쁘게 살고 싶습니까? 자기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사람이 없도록 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죄인이라고, 세리라고, 바리사이라고, 보기 싫다고, 생각이 다르고 출신이 다르다고 자기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것은 기쁨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인생을 기쁘게 살 수 없습니다. 밀어내는 마음에는 더한 불행만 쌓일 뿐입니다. "

p.47 "복음을 전하는 자는 예수님처럼 자기의 몸으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전하고 구원의 하느님을 체험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인생을 기쁘게 사는 비결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기쁨이어야 합니다. 이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가능합니다. 그는 다만 자기의 삶으로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줄 뿐입니다. "

p.51 "예수님은 천국이 ‘왔다’고 선포하시는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천국을 ‘가는’ 나라로 생각합니다. ‘오다’와 ‘가다’라는 단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없이는 예수님의 복음을 옳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천국이 이미 와 있는데 그곳이 ‘죽어야’ 가는 나라라면,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죽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59 "지금부터 2018년 전인 기원 0년이 아니라, 깨달음이 예수님 이전과 이후의 사람을 가릅니다. 예수님 이후의 시대를 산다 해도 깨달음이 없다면 기원전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회개와 믿음이 우리를 이 깨달음으로 안내합니다."

p.62 "우리 그리스도인은 희로애락의 모든 시간을 하느님의 시간으로 체험하는,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언제 어느 때나 항상 천국을 체험하는,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사제, 수도자, 더 나아가 신자들이 시간에 맞추어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p.67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천국을 체험하게 합니다. 사물의 외형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 안에 창조주 하느님께서 숨어 계십니다. 씨앗은 저절로 자랍니다. 사물을 억지로 지배하려 들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다스리게 놔두십시오. 하느님의 뜻에 따르도록 하십시오. 하느님께 맡기고 기다리십시오. 행복은 자기 힘으로 억지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억지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p.73 "천국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로 만들지 마십시오. 천국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들어와서는 안 되는 나라로 만들지 마십시오. 천국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이 아니라,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곳에 펼쳐지는 경지입니다. 천국에 가면 내가 싫어하고 미워한 사람이 나보다 먼저 그곳에 와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p.76 ~ p.77 "인간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하느님을 원망하고 불신하며 하느님을 외면할 수 있지만,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을 버리고 원망하여도 그 안에 계십니다."

p.79 "구유 출신이라고, 십자가에 처참하게 달린 사형수라고 외면하고 돌아서는 순간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 구유에서 태어나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고백만 할 것이 아니라 구유를 들여다보고 가난하고 불쌍한 아기에게, 그가 예수님이 아니어도 다가가 무릎을 꿇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p.90 "우리는 대체적으로 보기 싫은 사람을 자기 손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밀어내는 습성에 젖어 삽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천국도 밀어내고, 하느님도 밀어내며 생명을 밀어냅니다."

p.95 "제가 하느님께 믿음을 고백하는 이유는 그렇게 고백해야 제 하는 일이 잘 되고 영생을 보장받게 되리라는 계산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제 고백의 정도를 보시고 병을 낫게 하거나 덜 아프게 하시고, 일을 잘 되게 하거나 꼬이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p.107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구원을 위하여 살지 않고 다른 이들의 구원과 행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p.134 "적막한 곳, 고독한 곳, 외딴곳을 거치지 않은 사명이란 자기 과시일 수 있습니다."

p.138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해도 그것에 단단히 붙어 있을 수 있으리라. 보라, 바로 이것이 내게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찾고자 노력한다.” -키르케고르-"

p.139 "풍랑에 시달리는 배에서도 고요히 잠잘 수 있는 마음만이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흔들리는 배에서도 잠자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은 온갖 잡음으로 어지럽고, 희비가 엇갈리며, 불협화음을 내는 소란스러운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도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그분 음성에 귀 기울이며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p.140 "복음은 흔들리는 배에서 잠자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비운 마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소란을 피우면서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복음 선포를 위해서는 한적한 곳을 찾아 쉴 줄 알아야 하고, 어떤 풍파 속에서도 고요히 잠자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걱정에서 초연해야 합니다."

p.155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신 예수님은 모든 것(사람)에서 달랐습니다. 그분은 가난하고, 버림받고,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 깊은 곳, 너무 깊어서 그들 자신도 도달하지 못한 깊은 곳까지 내려가시어 그들을 만나시고, 그곳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그들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어찌 그분에게서 하느님의 권위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p.157 ~ p.158 "권위에는 위엄이 따르고 위엄은 청렴에서 나옵니다. 누군가를 아랫사람을 여기며 힘과 돈으로 다스리려 할 때 위엄은 사라지고 폭력이 나옵니다. 우리 사회에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가난과 청렴의 정신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위엄을 잃고 자비심이 사라져 가기 때문입니다. 사회뿐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일부러 자비로운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권위는 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p.158 "사람들은 복종을 요구하는 화려한 왕관이 아니라 순종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몸에서 위로를 받고, 사랑을 느끼고, 삶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신앙인들은 가난과 순명을 통해 사회에 권위를 찾아 주는 존재입니다. 신앙인들은 권위를 부리는 자가 아니라 권위가 있는 자입니다."

p.167 ~ p.168 "가난은 부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가난은 부를 비운 상태입니다. 가난의 덕을 통해 우리는 부가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누기 위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p.216 ~ p.217 "주일 미사에 꼬박꼬박 참례하여 성체를 모신다 해도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몸을 쪼개고 녹이지 못한다면,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지 못하고 이웃의 행복과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자기 몸을 희생시키지 못한다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냈다고 할 수 없습니다."

p.217 ~ p.218 "진정한 죄는 이웃을 위하여 자기 몸을 쪼개지도, 희생 제물로 내놓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단식일에 밥 먹고, 금식일에 고기 먹은 것이 죄가 아니라 먹지 않은 몫을 가난한 이와 나누지 못하는 것,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 날 먹는 것이 죄입니다."

p.218 "주일 미사에 빠졌다고 고백할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내놓지 못했음을, 이웃과 나누지 못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았다 해도 자기만을 위해 먹고 마시며 자기만의 힐링과 웰빙에 집착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p.253 ~ p.254 "복음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어찌 교회를 등지거나 교회를 모르는 이들의 탓이기만 하겠습니까? 교회를 등진 이들과 교회를 모르는 이들은 복음을 모르는 것으로 단정하고 교회로 모아들이는 것이 복음화일 수 없습니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복음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p.255 "겉으로는 교회의 옷을 입었지만 속은 세상과 다르지 않은 교회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별히 사제들을 의식하며 영적 세속성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지 말아야 한다면 세상도 세속화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p.255 "교회는 사람들을 실망시킨 언어들을 성찰하면서 교회에 등을 돌릴 정도로 혼란하게 만든 책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p.267 ~ p.268 "나는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는다. 내가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은 다음 일정한 시간이 지나 썩었던 몸이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멸할 이 몸이 불사불멸의 생명을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p.273 "믿음은 내 생각을 굳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승과 저승을 갈라놓으며 저승에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생각을 굳히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없게 경계를 깨게 한다. 믿는다면 내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없게 하라. 너와 나, 하늘과 땅, 성과 속의 경계를 깨라.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도록 나는 손을 뻗고 모든 이에게 다가가야 한다. 믿음의 근본 행위이다."

p.274 "나는 복음에 따라 하느님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 계시고 지옥에 내려가도 거기 계시는 분임을 믿는다. 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믿는다."

p.274 "창조론은 진화론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창조론은 신학적 개념이고 진화론은 과학적 개념이다. 창조론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신 사건을 말해 준다.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은 당신을 부정하고 원망하는 사람들 안에도 당신의 전부를 전달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세상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을 계시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우주만물을 내신 하느님은 우리의 시선을 우주의 끝까지 열어 주신다."

p.276 "세상과 세상에 사는 이들을 믿지 않고서는, 인간과 세상 안에 하느님께서 숨어 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따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p.278 "세상 사랑은 세상과 교회를 세속화에서 구한다. 세속화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다가 모든 것을 잃게 한다."

p.278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이를 위하여 자기의 존재를 바친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기쁨과 행복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른 이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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