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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르 10,1-12 '이혼장'은 필요했던 것이다... 본문

마르코의 우물/마르코 10장

마르 10,1-12 '이혼장'은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 뿐인 마음 2018. 5. 25. 09:48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마르 10,5)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라고 한 것은 이혼을 장려하기 위해서나 혼인의 가치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이제와서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사랑에 있어 무책임하고 일시적이며 일방적이고 파괴적인 이들로부터 그 상대방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즉, 물건처럼 취급되며 사고 팔렸던 여인들에게, 변덕을 부리는 남편들의 하찮은 이유로 물건보다 못하게 버려졌던 여인들에게 살아갈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 복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다시 진지하게 묵상하고 하느님의 인간 사랑을 기억하며 현시대에 적용해보아야 하는 복음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혼은 하느님이 맺어주신 성사적 결합을 인간이 깨트리는 것이지만 혼인의 성스러움과 창조적 의미, 사랑의 온전한 결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너무 쉽게 폭력적으로 혼인을 이용한 사람들 때문에라도 '이혼장'은 필요했던 것이다. 병의 치유를 위해 마약성분이나 독약 성분의 사용이 필요한 때가 있듯, 오랫동안 교회에서 결벽증에 가깝게 금기시했던 '이혼'도 올바른 혼인성사, 성가정을 위해서 필요한 때가 있다. 


사랑스러운 자녀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바람직하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부모가, 가정에서 길러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해도 2016년 통계를 보면 한 달에 3명의 아이가 학대로 죽었으며 학대 판정은 하루에 51건 이상, 하루에 12명의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버려졌다. 부모의 감금과 학대를 피해 수차례 도망쳤던 아이가 국가기관의 혹은 뜻있는 이웃의 ‘도움’을 받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져 결국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죽은 채로 발견되는 일이 간간이 뉴스에 보도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상적인 ‘가정’을, 부모의 품만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 가족과 부모라도 언제나 정답은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자칫 생명의 가치와 가정과 사랑의 소중함이 경시되기 쉬운 이 시대에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지키고 마음이 완고한 자들로부터 생명 사랑 가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또 다른 무언가가 무엇일지 교회는 앞장 서서 찾아내어 알리고 실천해야 한다.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이 땅에 하늘나라가 지금 임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는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감수해야 하며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지를 그 누구보다 앞서 하느님께 묻고 그 뜻대로 분별해야 한다. 문자에 갇혀, 관념에 갇혀, 하느님 사랑과 그 사랑의 결정체인 인간마저도 가둔 채 근근이 현재를 이어가는 것은 결코 호교가 아닐 것이다. 


이는 빼앗기는 것이 아니요, 훼손되는 것도 아니요, 변질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한 변모임을 깨닫자.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이 땅에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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