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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나이 탓이었으면 좋겠다 본문

하루하루 부르심따라

나이 탓이었으면 좋겠다

하나 뿐인 마음 2016. 9. 12. 22:37

희정수녀님으로부터, 내가 꿈에 나왔다면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자세하게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꿈이 하도 선명해서 내가 염려된다면서 전화를 한 거였다. 전화 온 김에 나도 요즘의 나를 줄줄 털어놓았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어 마음이 무겁다는 내 말에 "나이 때문이야. 젊은 선생님들은 화 잘 안내더라. 연세 많으신 선생님들도 이제 화를 안내시고. 우린 좀 더 지나야할 거 같아."하고 수녀님은 말했다. 평소 날씨탓, 나이탓, 상처탓 하는 거 너무 비겁하다고 말해온 나였지만, 요즘은 정말 나이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나이탓이라면 마음이 조금 나아질까. 하지만 아무리 나이탓이라고 해도 내가 한 행동, 내가 한 말들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한다. 원인은 사방에 널렸지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므로. 


얼마 전 분도 신부님과 카톡하면서, 살면 살수록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이  날로 커져서  매일 매순간 나의 바닥을 들여다본다는 내 투정에 신부님의 대답은 이랬다. 


"여전히 이 산과 나무들은 그 자리에 있듯이 하느님께서도 그 자리에 계시지 않니..."


J 수녀님이 가끔 생각난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사는 동안 좋은 기억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수녀님이 있던 분원에 가서 사는 동안 수녀님이 무섭고 야단을 잘 치는 성격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였다. 내가 아는 그 수녀님은 참 부드럽고 선한 성격인데 그 수녀님의 평가가 그러니 의아했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열의 아홉은 그렇게 얘기하니 그냥 그곳에 사는 동안은 힘든 일이 많아서였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되돌아보니, 수녀님이 말했던 그 '마흔'이었구나 싶다. 수녀님이 떠나던 나에게 "나도 마흔에 떠났고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말해줬었고. 그 분원에 사는 동안 수녀님은 '지금의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나 보다.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이해하기도 어려운 나라는 존재. 어제 본 기사에는 마흔은 우주가 흔들리는 시간이라고 하던데, 마흔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해서 그 진동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중이다. 사는 건 참 매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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