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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마태 18,1-5. 12-14 본문

마태오의 우물/마태오 18장

마태 18,1-5. 12-14

하나 뿐인 마음 2016. 8. 9. 23:08


제자들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누구인지를 궁금해 한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보여주시며 이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될 것이라 하시고 가장 큰 이를 궁금해하기 전에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부터 고민하도록 말씀하신다. 


오늘 복음에는 '하나'가 참 많이 나온다. 가장 큰 사람(물론 가장 큰 사람이니 하나일 수밖에), 어린이 하나,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 길을 잃은 한 마리... 사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한 분이시다. 


나의 눈길을 끄는 '하나'는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가장 큰 하나인가, 가장 작은 하나인가, 길을 잃어버려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인가. 나는 과연 작은 이 하나라도 잃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늘상 기억하고 있는가. 내 기도도 그러한가. 하늘 나라에서조차 가장 큰 이가 누구인지를 찾고 있는 제자들처럼 나 역시 만나는 신자들도 쉽게 눈에 띠는 사람들만 만나고 사는 건 아닌지, 기도할 대상도 크고 굵직굵직한 이슈들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부족하지 않은지 뒤돌아 보고 또 살펴 봐야 한다. 


아흔아홉 중에 다른 한 마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텐데 길을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는 말은 양떼를 눈으로만 돌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마음에 늘상 간직하고 살아야 그 빈자리가 느껴지는 법.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어야 보이지 않아도 아픔을 눈치 채고 신음을 듣고 찾아 나설 수 있는 법.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늘 기도 중에 기억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한 분. 그 신부님은 애써서 가시밭길을 자처하는 분이다. 편하게 살라고는 말 못하지만, 억울하고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해 안달인 신부님을 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하고 딱한 마음이 앞선다. 이곳저곳에서 받는 오해와 얻어 먹는 욕이 지긋지긋해서라도, 수시로 날아오는 어이 없는 출석요구서의 압박이 무거워서라도 그만두고 싶을 만도 한데 매번 상심하면서도 더 큰 보폭으로 힘을 내어 또 한 발씩 내디딘다. 이 분이 주춤하여 페북이나 트위터에서 며칠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때보다 더 잘 마음에 들어오고 기억이 난다. 어쩌다 한 번씩 들여다보는 페북에서도 그렇다. 그들에게는 이 분이 하나의 실낱 같은 희망일 테고, 내게도 자칫 잊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사건들을 기억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고마운 분이시다. 본인이 넘어졌을 때도 누군가 쓰러져 울지 않나 두리번 거리실 분. 찾아가서 울어주고 함께 있어 주는 신부님. 희안하게도 이 분은 좀 '작으시다'. 


작은 것,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 부러진 것, 넘어진 것, 우는 것...을 품에 먼저 안으시는 하느님이시기에 내가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고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다가설 용기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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