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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루카 12,15-21 본문
'하느님 앞'(21절)
많은 부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묵상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후회가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고르고 고른 말이 '하느님 앞'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 앞에 서 있는가... 수녀원 성당 당신 앞에 맘편히 머물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을 잘 넘겨야 한다'는 생각은, 이곳에서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마다 저를 버티게 한 생각이었습니다. 적어도 수녀원 성당에서 당신 앞에 자유롭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선택 말입니다. 그러다가 조용히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가 수확한 것'(17절)
부유한 사람이 직접 수확했을 리가 없으니 자신이 수확하지도 않은 것이 '내 것'인양 사는 사람들과 내가 땀흘려 수확했지만 결코 '내 것'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저 역시 전자였다가 후자였다가 하면서 안타깝게도 '내 것'에 갇혀 살아갑니다. 내가 켜켜이 쌓아두고 싶은 것은 비단 재물 만은 아닙니다. 사람일 때도 있고 능력일 때도 있습니다. 평판, 자존심일 때도 있고 상처와 과거, 질투, 불행, 외로움일 때도 있지요. 이 모든 게 마치 내 것인 양 그렇게 쌓으면서, 그것이 무너지면 마치 나를 덮치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쌓고 또 쌓아갑니다. 이번엔 조용히 당신이 물으십니다.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20절)
이 조용한 물음 앞에서 겨우, 조금 깨닫습니다, 당신께서는 저더러 무조건 쌓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달리며 살되,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쌓으라(마태 6,20)는 말씀이신 것을 말입니다. 어리석게 쌓고 있던 사람, 능력, 평판, 자존심, 상처, 과거, 질투, 불행, 외로움...을 당신께서 '차지'하겠다는 뜻임을 눈치챕니다. 이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주인은 '당신' 뿐이심을 제가 인정해갈 때, 나의 외로움까지도 서서히 당신께 드리고 나면 결국 당신께서는 저마다 '차지'하시겠지요.
며칠 전 휴가 때 보았던 하늘입니다. 당신께서 차지하신 하늘을 가끔, 저도 차지합니다. 당신이 제게 보여주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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