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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소비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 본문
존 F. 캐버너 지음. 박세혁 옮김. IVP.
우리의 인간됨에 충실하려면 책임감을 가지고 잘못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것이 회개와 회복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 Anonymous)의 현명한 충고처럼, 우리의 삶을 거짓 없이 철저히 드러낼 때 비로소 술에 취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국가를 개혁하기 위해 기독교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다. 우리가 순결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진리다.
사제에 의한 성추행 추문은 희생자나 가해자, 모든 신자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안겨 주지만, 악을 드러내고 지적하는 것은 정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은총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것은 모두 선을 위한 일이다.
마음과 정신을 유혹하는 것은 쾌락만이 아니다. 권력과 재산 역시 우리를 유혹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상태를 보여 주는 가장 놀라운 징후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전쟁에서 젊은이들의 목숨을 희생할 용기는 있으면서 '덜 탐욕스럽고 덜 낭비해야' 한다고 말할 용기는 없다는 사실이다.
자아의 죽음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훨씬 전에, '무엇을 먹는가, 무엇을 건설하는가, 무엇을 사는가'가 우리의 본질이라는 신화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다. 인간으로서 나약함, 무방비 상태, 피조물로서의 실존에 대한 두려움은 소비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각기 다른 이 사례들의 이면에는 우리의 참된 자아, 우리의 인간적인 한계, 우리의 정신적, 신체적 부족함을 거부하려는 모습이 숨어 있다.
자신의 내면과 연결되지 못하는 우리는 다른 이들의 내면과도 연결될 수가 없게 되었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다른 사람 앞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격과 접촉하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받아들일 줄도 모른다.
사물은 상처 받지 않는다. 피를 흘리거나 고통을 당하거나 죽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물과 상품, 물건을 제일 중요하게 취급하는 문화는 결국 상처 받기 쉬운 인간으로부터 도피한 문화일 뿐이다. 내면성을 피하거나 친밀함을 거부하거나 사람들의 가치를 부당하게 폄하할 때, 우리는 무방비의 인간 실존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복해서 묻는다. 당신은 이해하는가? 이해하는가? 어려움에 처했는가? 어려움에 처했다면 도움을 구해 보았는가? 도움을 구했다면, 당신을 도울 사람이 있었는가? 그랬다면, 그의 도움을 받았는가? 어려움에서 벗어났는가? 당신은 어떤 종류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은 의식을 하며 사는가? 자아를 가지고 있는가? 당신이 누구인지 아는가?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가? 당신은 사랑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지 알고 있는가? 사랑받고 있는가? 미워하는가? 내 말을 알아듣는가? 돌아오라. 반복해서 말하겠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돌아오라.
- 워커 퍼시Walker Percy, 「우주에서 길을 잃다」-
인간의 실존으로부터 우리를 제도적으로 소외시키는 마지막 요인은 가난하고 상처 입은 이들의 절규를 듣지 않는 우리들의 태도다.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고' 우리의 인간됨으로 '되돌아가라'는 광야에서 외치는 워커 퍼시의 목소리는 내적인 삶을 재발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단순함이 주는 기쁨을 새롭게 인식하고, 정의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재발견하라고 촉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이 저마 다 독특한 인격적 실존을 지닌 사람들을 구속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 자신의 삶과 다른 이들과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결제적 세계에 총체적으로 반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품 물신주의' 사람들은 점점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상품을 숭배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마치 인격체를 대체하는 것처럼 상품을 대할 뿐 아니라, 상품이 우리에게 의미와 목적,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는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한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대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인간성을 상실한 사물에 불과한 존재인 것처럼 서로를 대하게 된다. '물신'이란 만들어진 것, 인간 노동의 산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물신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는 힘을 그것에 부여하고 물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 자신을 꾸민다.
우리는 성과 폭력, 포르노그래피에 사로잡혀 있고, 약물과 '연예계' 저녁 뉴스에 중독이 될 지경이다.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제한될 때 분노하고 '구속받지 않는 관계'를 선호한다. 우리는 3등급으 교육 제도와 3등급의 도덕 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도덕을 남들에게 '강요'하고 그 결과 남들도 그들의 도덕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판단하거나 판단받기를 싫어한다. 다음 세대에게 엄청난 규모의 국가 채무를 떠안기고 엄청난 규모의 살상 무기를 남기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다음 세대의 필요에 무관심하다.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을 환대하지 않는다. 아무런 제한 없이 낙태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장차 성공할 아이들만 태어날 자격이 있다는 우리의 암묵적인 합의에 기초해 있다.
- 「참되고 유일한 천국(The True and Only Heaven), 크리스토퍼 래쉬(Christopher Lasch)」-
소비주의는 실재의 체계(무엇이 가장 실재적이며 가치 있는 것인가에 관한 철학)인 동시에 종교(무엇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에게 궁극적인 의미를 제공하는가에 관한 믿음)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삶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 버렸다. 소비주의와 상품이 중심이 되는 삶의 형식은 우리의 다양한 경험이 그렇듯이 그 형식 속에서, 그 형식을 통해, 그 형식과 더불어 살악가는 통합적인 단일체로 이해해야 한다. 소비주의가 어떤 식으로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하나의 총체적인 세계관으로 보아야 한다. 소비주의는 그저 쇼핑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다. 소비주의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 사랑하고 기도하는 방식, 적을 평가하는 방식, 배우자나 자녀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소비주의는 '체계적'이고 '변증법적'이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복음 역시 서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생활 세계'를 이루는 각각의 영역들을 관통하고 통일시키는 통합적인 단일체로 이해해야 한다. 복음은 그저 기도하는 시간이나 주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이 진짜라면, 우리가 예배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노동하고 노는 방식, 물건을 사고파는 방식, 사랑을 나누거나 전쟁을 대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먼저 성령이 다스리지 않거나 다스릴 수 없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역사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역사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성령의 통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우리의 참된 인간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처음에는 두려운 일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 우상을 포기하고 고통스럽게 우상과 결별하는 것은, 곧 우리를 짓누르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손을 펴서 우리의 궁극적인 본질을 붙잡는 것이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앞에 겸손한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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