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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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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다

Kingdom of Heaven

하나 뿐인 마음 2014. 11. 12. 06:51



살면서 나의 바닥을 경험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을 만나게 된다. 진짜 이유를 발견했을 때 말이다. 나에겐 털어놓을 수 없는 바닥의 경험이 대부분이지만, 그나마 털어놓을 수 있는 몇 가지 모습 중 하나의 기억이 있다. 수련자 때였던가. 우린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고 우리가 제일 윗 그룹이라 대본 담당, 음악 담당, 소품 담당 등 역할을 나누면서 아래 그룹 자매에게 음악을 맡기고 반장이 돕기로 했는데 그 자매가 나를 찾아와 도저히 반장과는 할 수 없다면서 나더러 함께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던 것이다. 회의를 하면서 나는 그 자매가 할 말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겠다.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생각에 우쭐하여, 평소 반장의 독단에 대한 불만까지 합세하여 "No"라고 해야할 자리에서 "No"라고 대답하지 못한? 않은?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선명하여 아직도 그 날의 3층 복도를 자세하게 기억할 정도다. 어둡고 좁았던 3층 복도처럼 내 양심도 어둡고 좁았다. 닫힌 방들이 줄지어 늘어선 복도처럼 내 양심도 쉽사리 열리지 않았던 때. 나는 그때 나의 바닥을 보았다. 결국 나는 그 자매와 함께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게 다물었던 내 양심의 부끄러운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No"라고 대답하지 못한 것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진짜 이유가 있었고 내가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신의 이름으로 치뤄지는 십자군 전쟁. 예루살렘은 핑계일 뿐이고 진짜 목적은 거칠고 무자비한 힘과 지배 욕구일 뿐이란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전열을 가다듬은 아랍인들 앞에서 "개종합시다, 나중에 회개하고."라는 말은 서슴치 않고 내뱉을 수 있는 사제는 '편리한 신앙관'을 지닌 것이 아니라, 믿지 못하는 것. 삶까지 바꿔가며 '하느님'을 믿은 이유가 '신앙'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곧 우리의 모습이지."라는 주인공의 말을 들으며, 안타깝지만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도, 자신을 가장 모를 수 있는 사람도 '그 자신'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나의 선택이란 것.


영웅이 영웅이 되는 진짜 이유는 뭘까. 헐리우드 특유의 영웅 이야기는 어이없어 하면서도(대통령 한 사람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이야기. 연약한 소녀가 투사가 되어 민족을 구원한다는 이야기 등등) 나에게 '이유'를 생각하게끔 한다. 순진했던(과연....) 어릴 적엔 영웅을 꿈꾸었을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영웅만큼 피곤한 삶도 없단 걸 알게 되고, 이제는 우리가 꿈꾸고 사람들이 말하던 '영웅'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영웅이란 존재가 꼭 세상을, 민족을 구해야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말이다. 자신이 직면한 바닥의 순간에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것도 영웅이고, 불의 앞에서 눈감지 않는 것도 영웅이며, 정의를 위해 힘든 길 돌아가며 눈 앞의 이익에 무너지지 않고 부단히 싸우는 것도 영웅이다. 그래서 영웅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에서보다 내 주위의 삶에서 더 아름답게 빛난다. 그래서 영웅 이야기는 이 세상을 위해서라도 쓰여져야만 하는 게 아닐까.


또 하나, 영웅 이야기를 그리도 부담스러워했던 나의 '진짜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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