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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본문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민음사.
이름에 색깔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는 하나와 이름에 색깔을 지닌 넷. 이름에 색채가 없기에 자신의 인생에 색채가 없다고 판단하여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쓰쿠루와 이름에는 색채가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삶에는 색채가 없음을 눈치챈 쿠로(黑), 아오(靑), 아카(赤), 시로(白)가 자신만의 색을 찾아 떠날 줄 알았던 무채색의 쓰쿠루를 동경 혹은 질투하여 벌어지는(split) 이야기. 솔직히 너무나 하루키다운 소설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하루키답게 정답을 전개하는 소설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이야기가 딴 데로 샜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 지는 것도 일종의 운동 실력이라는 거야."
쓰쿠루가 바로 '잘 지는' 운동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모두들 이기기 위한 운동 기량을 높이는 와중에 (물론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경기에 실패함으로써 또 다른 운동 실력을 쌓아나간 사람.
"잘 모르겠어요. 쓰쿠루 선배와 달리 내게는 이런 걸 하고 싶다는 뚜렷한 뭔가가 없어요. 뭐가 어찌 됐든 가능한 한 깊이 생각하고 싶어요. 그냥 순수하게, 자유롭게 사고해 나가고 싶다. 그것 뿐이예요. 그러나 순수하게 사고한다는 건 생각해 보면 진공을 만드는 것 같은 건지도 모르죠."
완전해 보였던 그룹에서 혼자 떨어져나간 쓰쿠루는 자신만 버려졌다 여기며 무채색의 삶을 고집하지만, 쓰쿠루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그를 '뚜렷한 뭔가가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은 쓰쿠루에게 피하지 말고 가능한 한 깊이 생각하라고 일깨워준다. 쓰쿠루는 내용 없는 텅 빈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실은 '진공을 만드는' 일이라고...
나는 내용 없는 텅 빈 인간일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렇게 생각한다.
쓰쿠루가 용기를 내어 처음 지점으로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고 스스로 그것을 해냈을 때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본인이 그것을 얼마나 감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들은 제나름의 의미가 있고, 성공이든 실패이든 그게 무엇이든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실력'이고, 자신은 그 실력을 갖추어가고 있었음을 서서히 인정하게 되는 것.
"나에 대해서는 이제 마음에 두지 마. 난 그럭저럭 가장 위험했던 시기를 이겨냈어. 밤바다를 혼자 헤엄쳐 건널 수 있었어. 우리는 제각기 있는 힘을 다해 각자 인생을 살아왔어. 그리고 긴 안목으로 보면, 그때 혹시 잘못 판단하고 다른 행동을 선택했다 해도, 어느 정도 오차야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지금과 같은 자리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어. 그런 느낌이 들어."
자신의 칼에 상처 입지 않은 무장(
"지금까지 나는 계속 내가 희생자라고만 생각했어. 이유도 없이 가혹한 짓을 당했다고 생각해왔어. 그 때문에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가 내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비틀었다고. 솔직히 말해, 너희 넷을 원망하기도 했어. 왜 나 혼자만 이런 참혹한 꼴을 당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희생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동시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칼날이 나를 벤 건지도 몰라."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나도 너도.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에게는 살아남은 인간으로서 질 수밖에 없는 책무가 있어. 그건, 가능한 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야. 설령 온갖 일들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상처가 나은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발견하고 감각하게 되는 이야기 같았다. 아픈지조차 모르고 살아갈 땐 자기 자신(상처)에게만 집중한다. 몸은 아픈데 머리가 해결점을 찾지 못하니 마음도 자신을 위로할 줄 몰랐다. 하지만 쓰쿠루는 억지로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고 통증을 감각하고 인정함으로써 주위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역을 만드는 것에 만족했지만 이제는 역의 역할을 고민하고 그 역을 오가는 이들의 삶으로까지 그의 인식 범위는 넓어진다. 더불어 통증도 되살아났지만, 그 통증이야말로 자신의 삶에 색채를 부여하는 주체 혹은 색채 자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아마도 나한테는 나라는 게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개성도 없고 선명한 색채도 없어. 내가 내밀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게 오래전부터 내가 품어 온 문제였어. 난 언제나 나 자신을 텅 빈 그릇같이 느껴 왔어. 뭔가를 넣을 용기로서는 어느 정도 꼴을 갖추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내용이라 할 만한 게 별로 없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사람한테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를 잘 알게 되면 될수록, 사라는 낙담하게 도지 않을까. 그리고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을까."
"혹시 네가 텅 빈 그릇이라 해도 그거면 충분하잖아. 만약에 그렇다 해도 넌 정말 멋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릇이야.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그런 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렇게 생각 안 해? 네 말대로라면, 정말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되잖아.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그 안에 뭔가를 넣고 싶어지는, 확실히 호감이 가는 그릇으로."
상처라기 보다는 값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다. 삶을 배우기 위해 치르는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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