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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본문
책 제목처럼 그는 당당했고 한 우물을 팠던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깊이도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세상과 맞설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한 상처가 거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 학문을 하든 음악을 듣든, 사람을 사랑했던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힘이 넘치면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기분이 그대로 이 책에도 전달된 건 아마... 내 탓이리라.
두께에 비해 진도가 빠르다던 많은 이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을 자주 만났고 그때마다 힘이 들었다. "인간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해요. 그런데 자본의 논리도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종교의 논리도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는 거예요. 항상 오늘은 수단이예요. 내가 살아 있는 이 삶 자체가 수단인 거예요. 천국을 위한 수단이든 후손한테 자본을 남기기 위한 것이든 똑같아요." 이 말뿐만이 아니라 꽤 많은 부분에서 나는 그와 부딪혔다. 그의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다. 그때마다 열의 아홉이 잘못한다고 해서 그 아홉이 본질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대화가 아닌 이상 내가 그에게 말을 걸 수는 없었지만 그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혹은 그의 영향을 받은 이들과의 만남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해야 할 말,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책장을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강신주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걸어갔던 것처럼, 나 역시 나의 삶에 육박(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단어가 바로 육박^^)해오는 그의 도전 아닌 도전을 받아들여야지만 내 삶을 당당하게 걸을 수 있을 테니까.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답답하다면서 누차 강조하는 많은 이야기들에서 나는 예수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그는 기독교(그가 말하는 종교라는 것이 내겐 개념 혹은 신념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기독교라기보다는 문제 많은 일부 개신교 종파에 국한된 생각 같기도 했다)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바로 그런 부분들 때문에라도 종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기도 했다. 후후.
물론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의 태도가 참 마음에 들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않는 것도 고마웠고. 특히 사람을 상담하면서 그가 지니는 기본적 태도.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을 헛짚으면 그 사람은 얘기를 하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상대방이 '이 사람은 철학자구나. 나는 너무 남루한가 보다'이러고 끝날 때가 제일 힘들어요. '내가 더 섬세한데'이런 건 괜찮아요. '내가 대단한 고민을 하나 보다. 철학자가 파악을 못 한다' 이런 건 괜찮다고요. 그런데 제 이야기 속에서 자기의 실존적 상황이 무시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럴 때는 제가 진짜 잘못한 거예요. 한번 잘못하면 회복하기 힘들어요. 그 사람이 마음을 열고 손을 내미는데 그 손을 못 잡으면 다시는 못 잡아요. 그걸 잡아야 하는데. 그게 그 사람에게는 구원의 줄이란 말이예요. 그것만 잘 잡아서 열리면 그 친구는 괜찮은 거예요. 지구상에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은 있으니까. 그러면 안 죽거든요. 외롭지도 않고."
전문 상담가는 아니지만 살고 있는 삶의 특성상 많은 이들의 아픔을 듣고 함께 나누어야할 기회가 많은데 나를 철저히 포기하고 그 사람만을 위한 상담을 한다는 것이 살아갈수록 어렵다. 상담기술도 기술이거니와 상담을 하면서 대면하게 되는 나 자신을 견디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나를 포기하는 것이 날이 갈수록 무겁고 두려운 일. 게다가 상담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만남에서도 이런 일들은 곧잘 일어난다. 그가 "실천하도록 하는 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글, 관조하지 않도록 하는 글, 삶에 직면하고 살아감에 직면하는 글을 써야 해요, 죽었다 깨어나도." 하면서 업보처럼 여기고 받아들이는 운명처럼 나역시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선 강신주 선생과 나는 같은 길을 걷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을 여기에다 다 풀어놓을 수는 없다 해도 그에게서 받은 위로의 문장을 놓쳐서야 되겠는가. "어떻게 저의 삶의 고통을 심화시킬지 항상 고민해요. 제 고통이 어느 정도 폭이 되면 그 폭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힘이 될 거예요. '넌 잘 되고 있어, 잘 살고 있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나 더럽게 힘들게 살거든, 까불지만' 이런 식의 위로죠. 간혹 나이는 어리지만 저보다 고통이 큰 아이를 만나면 대응을 못하겠어요. 그런데 저보다 좁으면 빤히 보여요. 어쨌든 다행인 것은 이런 고통을 대면하면서 사적인 면에서, 공적인 면에서 고통의 폭이 쌓여 나간다는 거예요. 위대한 작가들은 그 고통의 폭에서, 고통을 노래하는 거니까요." 그래요, 우리 함께 기꺼이 아픔을 용기 있게 받아들입시다, 아팠던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신명나게 부를 수 있도록.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도록 생각하시면서 좀 읽어보시지요, 하면서 누군가에게 이 책을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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