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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본문

雜食性 人間

마음짐승

하나 뿐인 마음 2013. 9. 15. 07:12


헤르타 뮐러 장편소설.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구름 한 점마다 친구가 들어 있네

 공포로 가득한 세상에서 친구란 그런 거지

 어머니도 원래 그런 거라 하셨네

 친구야 아무렴 어떠니

 진지한 일에나 마음을 쓰렴."

                                                 - 겔루 나움 -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져."

주인공은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없는 주인공. 어쩌면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래서 암울한 독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짐승의 주인공이다.


"우리는, 에드가와 쿠르트, 게오르크와 나는 두려워서 매일 함께 있었다. 만날 때면 우리는 한 테이블에 앉았지만 두려움은 각자가 가져온 그래도 각자의 머릿속에 머물렀다. 그걸 감추느라 우리는 많이 웃었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결국 머리를 벗어났다. 두려움은 표정을 관리하면 목소리로 숨어들었다. 표정도 목소리도 죽은 물건처럼 통제하는 데 성공하면 두려움은 손가락으로 빠져나갔다. 피부를 뚫고 나가 멋대로 떠돌다가 주변 사물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다. 안 지 오래된 사이기에 우리는 누구의 두려움이 어느 자리에 앉는지 볼 수 있었다. 서로를 참아내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입혀야 했다."

독재 시절을 더듬으며 쓴 자전적 소설이라 그런지 그녀의 글은 애매한 두께와 무게를 가졌으면서도 댕강댕강 토막나 있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는 떡가래 끊어지듯 찰지게 늘어나며 분리되지 않고, 손쉽게 부러뜨릴 수 없는 두께와 무게를 지닌 탓인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툭 거칠게 부러져 있었다. 문장의 시작과 끝은 이미 부식되어 버렸고 동강난 문장 끼리는 더 이상 맞물릴 수 없는 사이가 되었기에 바스러져 떨어져 내리는 언어들을 포기하고 있었다. 가루가 되어버린 언어들.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들이 바로 뺄것도 보탤것도 없는 헤르타 뮐러의 심정이리라.


"조금만 더 가볍게 걷자, 별일 없이 강가에 간 거라는 듯 그들은 말했다. 

천천히, 빠르게, 조심조심 혹은 서둘러 걷는 건 아직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볍게 걷는 법은 잊었다."

암흑의 시대에는 가벼울 수 없다. 그림도 시도 노래도 한숨도 모두 무겁다. 가벼운 척 얇은 가면을 쓰고 다녀도 태산보다 무거운 마음의 무게가 그림자로 따라붙는 법. 

"다음 날 그들은 내 비명을 잊었지. 습관이 그들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어."


나는 마음짐승을 읽는 동안 기형도의 시집도 함께 읽었었다. 책장을 덮기 전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신기하게도, 그녀 역시 번역하는 동안 기형도의 시들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단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나는 아직도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진 그 시절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으며 개인의 존엄성을 속속들이 헤집어놓은 권력의 그 시절의 그림자들이 여전히 두렵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여전히 '그 시절'이며 어쩌면 이제 시작에 불과한 '그 시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불안하다. 아무렇지도 않은듯 사는 사람과 생사의 끝에서 아슬아슬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사람과 그들 사이에 장벽처럼 존재하는 거대한 자본과 권력. 


그녀의 글처럼 나의 리뷰 역시 동강나 있다. 어디서 어떻게 끊고 무엇으로 연결해야할지 알 수 없는 탓이다.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을 헤매며 헤르타 뮐러의 글로 리뷰를 마쳐야겠다. 


여러운 시절에 대한 책들은 종종 증언으로 읽힌다. 내 책들 역시 부득이하게도 독재치하의 절단된 삶, 밖으로는 굴종하고 안에서는 자화자찬인 독일 소수민족의 일상과 독일로의 이주를 통한 그들의 점진적인 소멸을 다룬다. 그런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내 책들은 일종의 증언이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쓸 때 스스로를 증인으로 느끼지 않는다. 나는 침묵과 의도적인 침묵으로부터 글쓰기를 배웠다. 


언어는 내면을 포괄할 수 없다. 내면은 말들이 머물지 못하는 곳으로 사람을 이끈다. 말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삶의 대부분이 어그러질 때, 단어들도 추락한다. 나는 내가 가졌던 단어들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내가 가지지 못했던 단어들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문학이 증언이 될 수 있는가', 헤르타 뮐러)


(헤르타 뮐러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듯 해서...)

헤르타 뮐러1953년 8월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며 독일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루마니아 바나트 지역 니츠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티미쇼아라대학에서 독일·루마니아 문학을 공부했으며, 대학시절부터 목가풍의 사랑이나 자연의 신비를 노래한 시를 썼다. 졸업 후에는 77년부터 79년까지 기계공장의 번역가로 일했는데, 차우세스쿠 독재정권 치하에서 비밀경찰의 끄나풀이 되어달라는 요구를 거부해 해고됐다. 해직 후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루마니아 독일계 작가들의 단체에 참여하다가 전업작가로 등단했다. "응축된 시정과 산문의 진솔함으로 소외계층의 풍경을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독일어권 문학에서 주변부를 차지하는 소수자이자 동구권에서 망명한 작가로서 적통의 독일작가는 아니지만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독일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작가이다. 그녀는 떠나온 조국 루마니아의 독재체제와 독재의 폭압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는 사람들, 체제를 이루려는 사람들의 경직성에 대해 여과없이 그려냄으로써 개인과 사회, 사회와 국가 체제 사이에 놓인 긴장의 역학 관계를 뚜렷이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마음짐승

저자
헤르타 뮐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8-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불안과 공포의 시대에 휩쓸린 젊은이들의 초상!2009년 노벨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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