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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제의방 문 따이소. 병자성사 났습니다" 본문

바람은 불고 싶은대로 분다

"제의방 문 따이소. 병자성사 났습니다"

하나 뿐인 마음 2013. 6. 27. 06:18

2006.11.13.

 

월요일은 쉬는 날이다. 특히 나같은 종류의 사람은 하루종일 잠을 잔대도 모자람이 없는 날. 본원 월모임이 있어서 좀 자다 갈려고 벼르던 차에 전화가 울렸다. 월요일에 오는 전화를 거의 받지 않는다. 이상한 전화도 많고, 쓸데없는 전화도 많아서... 몇번이나 울렸지만 계속 되는 건 아니라서 그냥 있었다. 쌩~

쉴려는데 이번에는 인터폰이...보좌신부님이다. "예"

"제의방 문 따이소. 병자성사 났습니다"

얼른 달려가서 준비해두고, 기다렸다.. 팍사그리하고 부시시, 초췌 그 자체의 얼굴로 신부님이 달려온다. 내가 전화 받아서 폰 했으면 얼매나 귀찮아했을꼬...다행이다. 신부님이 내한테 전화해서...

부랴부랴 차를 빼오시고, 경대병원으로...

가는 내내 월요일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사실 병자성사를 청하는 많은 분들이, 필요치 않을 때도 무리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 양치기 부류- 이번 경우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이런 말은 쉽게 내뱉으면 안된다...하여간 할말과 하지말아야할말을 가려가며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생각보다 심각했다. 피를 한참이나 토하셔서 얼굴도 엉망이고, 의식도 없다. 잘왔다는 생각도 안들고 가슴부터 아프다.. 평소엔 좀 헐렁해보이는 보좌신부님이 가디건까지 벗어던지고 할매 얼굴에 바짝 다가가서 조근조근 속삭이신다... 하느님이 할매를 사랑하신다고...

이런 신부님 뒷모습이 참 좋다..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울다 지쳐 퉁퉁 부은 모습인데도 우리를 대통령 모시듯 맞이한 가족들이 내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하단다..그들은 이미 큰 위로를 받은듯 보였다.. 신부, 수녀라는 존재만으로 그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것. 사람들한테도 하느님이 좋은 분이시지만, 이럴 땐 내게도 참 좋으신 분이시다..

한참을 긴장하고, 병자성사가 끝나고 마무리 멘트까지 깔끔하게 끝낸 후(이럴 땐 수녀는 침묵을 지키며 시종일관 기도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진짜 이렇게 했음) 돌아나오는 길...내가 하느님 사람이 된게 참 기쁘다.

여유를 부리며 신부님이 한턱 쏘는 다빈치 에스프레소를 들고 차에 탔다.. 신부님 말대로 그 자매님, 하느님이 도우셨는갑다...

저녁에 돌아가셨다..

하느님, 데레사 할머니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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