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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에 다녀왔다 본문

바람은 불고 싶은대로 분다

산소에 다녀왔다

하나 뿐인 마음 2013. 6. 27. 06:16

2006.11.6.

 

첫서원하고 다녀온 후로 처음이지, 아마... 산소에 다녀왔다.

모처럼 여유있는 월요일,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8일제를 지키고 싶기도 했고 이렇게라도 다녀와야지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미루다가 출발했다. 날씨도 엉망이고 바람과 비가 엄청이었다. 치통도 있고 편두선도 부었는데다 아침까지 사지통 약까지 먹은터라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날씨에 몸도 별루인데다가 혼자서 그곳까지 갈라고 하니 내 우울한 감정이 버텨낼지 도무지 자신이 없어서였다.

괜히 동생 수녀님 먹인다고 라면 끓이고 만두 튀겨주고 내친김에 닭다리까지 튀겨줬다. 설거지하고 청소 좀 하고 나니 어느새 12시가 가까워지고... 안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나선 길..

2시간 10분 동안 고속버스. 내려서 버스 좀 기다리다가 다시 102번을 타고 1시간. 현충원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부랴부랴 내리긴 했는데... 차라리 우산을 쓰지 말까 싶을 정도로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이곳에 다닌지 20년이 다 되어가건만...오늘처럼 맘도 몸도 처량하기는 첨이었다. 그래도 물론 씩씩하게 걸었지.

엄청난 비와 바람... 날 못가게 하려는 건지, 기를 쓰고 가도록 날 부추기는 건지...하여간 기를 쓰고 걸었는데, 바람 탓이었는지 2년만에 오기 때문인지 길을 헤맸다.

그렇게 멀었었나... 혼자 오는 길을 언제나 조금 멀게 느껴지긴 했지만 오늘처럼 멀게 느껴진 건 첨이다. 가도가도 보이지 않아 지나쳤나 싶어 그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왔다. 근데도 아버지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494번호를 보기 위해 몇바퀴를 돌았건만... 솔직히 너무 추워서 돌아갈까 싶기도 했다. 낼부터는 이틀동안 사무실도 지켜야 하는데 몸살나면 안되는데 싶은 얄팍한 계산까지 하면서...

그러는데 비가 다시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산마저 뒤집어지고..수도복도 펄렁펄렁...그래서 오기가 생겼다. 엄마, 아부지...꼭 보고 갈겁니다..돌아나온 길을 다시 더듬어 걸어갔다. 돌아온 곳에서 한참을 더 걸어가서야 낯익은 곳이 시작되었다. 첨 왔을 땐 허허벌판이었는데 이제는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래도 엄마 아버지 무덤은 여전히 내 눈에 쏘옥 들어온다...돌아돌아서 도착한 무덤... 요즘 우울한 내게 뭔가를 가르쳐주시는 건가..

비바람이 부는 속에서 혼자 가까스로 걸어가는 듯한 기분...돌아돌아야지만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해주시는 걸까. 지치고 지쳐도 다시 걸어갈 마음이 있어야 된다고...

되돌아오는길.. 차 안에서 좀전에 문열고 인사하던 남자분이 소리친다. "수녀님,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드릴께요!"

되돌아가는 길은 수월케 해주마...그러니 돌아서 가는 길에 힘을 주거라...

근데요, 지금은 힘이 안나요...

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 있다는 것은 알아요. 그래서 돌고 돌더라도 끝까지 걸어간다면 보인다는 것도, 만난다는 것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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