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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꽈리 본문

바람은 불고 싶은대로 분다

꽈리

하나 뿐인 마음 2013. 6. 27. 06:12

 

2006.10.17.

 

그렇게 가고 싶던 본원에 다녀왔다...

카펠레를 지나쳐 복도로 들어서는데 꽃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백일홍 한송이, 꽈리 하나... 이쁘긴 한데 왠지 오늘은 맘에 안든다. 내맘이 심퉁해서겠지...

저녁기도를 마치고 복도를 지나쳐오는데 창턱에 놓인 꽃병 하나가, 아니 거기 꽂힌 백일홍 말고 꽈리 하나가 지나치는 내 눈에 또다시 쑤욱 들어왔다.

대수련 수녀님들의 30일 피정 나누기를 듣고 있었다. 난...거기 앉아있는게 너무 힘들었다. 피정 나누기가 너무 생소했다. 억지로 앉혀놓은 아이처럼 내내 몸을 비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억지로라도 집중해볼라고...근데 낮에 본 꽈리가 보인다. 눈을 지그시 감으면 감을수록 꽈리만 더 선명해진다.

심술이 발동했다. 백일홍이야 물에 담궈두면 생명을 연장하기라도 하지, 팍삭 마른 꽈리를 물에 담궈두다니..이건 무슨 심술이야?? 도대체 왜 꽈리를 물병에 꽂아두냐고...왜 약올리냐고... 손을 대기만하면 금방이라고 부서져 버릴 것 같은 꽈리를 왜 물에 담궈두냐고...물먹은 한지처럼 꽈리도 흐물거리며 금새 늘어져버릴 것 같았다. 결국 구색 맞추느라 물병에 꽂힌 채 자리만 지키는 꽈리가 나, 김성심 같았다.

마르고 말라서 누가 손만 대기만 하면 금새 부서져내릴 것 같아...

가루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버릴 것 같아...

물에 담겨 있으면 생명 연장을 커녕 오히려 흐물흐물 녹아버려 흔적도 없어질 것 같아...

구색 맞추느라 머물고 있긴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야...

수녀님들의 나누기가 한창 무르익었는데 내 안에는 내 목소리가 무슨 돌풍처럼 윙윙 거리며 나를 위협했다.

나누기를 듣는게 너무 힘들었다. 오후에 봤던 video도 지루했고, 동산에 모여 하는 나누기 때도 입조차 열지 않았다. 난 꽈리처럼 바삭 말라 있었다. 속도 텅 비어있는 것 같다..

하느님도, 기도도, 말씀도, 요즘은 참 멀게만 느껴진다. 미사도, 성무일도도, 묵상도 꽈리처럼 텅 비고 바삭 마른 채로 그냥 견뎌내고 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게 뭔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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