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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요한 6,1-15 본문

요한의 우물/요한 6장

요한 6,1-15

하나 뿐인 마음 2013. 4. 14. 03:55



영어로 복음을 읽기 시작한 후로 새로운 단어들이 눈에 보인다. 물론 지금의 내 삶이 그 묵상 꺼리를 쏙쏙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recline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온다.

'기대다' '눕다'라는 뜻이라는데 성경에는 '자리를 잡다'라고 번역되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recline을 명하시고,

두번째, 사람들은 그 명에 따라 recline을 행했다. 이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어쨌든 recline하라는 명에 따른 이들이다. 이들이 오천 명쯤.

세번째, 감사를 드린 빵과 물고기를 recline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기대다'라는 단어 덕에 제자 요한도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쨌든 recline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편히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었다.

'자리를 잡다'라고 번역되는 걸 보니 더욱 그렇다.

그 장소에, 그 상황에 자리를 잡는 사람.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곳이라면 먹을 것이 없어도, 이미 해가 저물어 돌아갈 길이 막막해도,

잠자리든 앞날이든 모든 것이 묘연해도 

예수님 한 분 만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사람.


바로 수도자가 아닌가...

이곳에 와서 정신 없이 휘둘리고(아니 나 스스로 흔들리고) 둥지를 틀기는 커녕 숨을 데만 찾진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첫째, 수도자가 되라고 부르시고,

두번째, 내가 예수님의 그 명에 따르고,

세번째,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신다.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주셨다.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내가 이곳에 와서 수도자로 살고자 마음 먹고 자리를 잡아 뿌리를 내리면

원하는 대로 은총을 주신다.


근데 남은 것은 어찌 되었을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모아진 것들은 당장 눈앞의 걱정에 사로잡혀

자리잡지 못한 사람들에게 결국 돌아가게 되어 있는 건 아닐까? 만고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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